세계일보

검색

[책동네 산책] 고전 읽기 문화 더 깊어졌으면

입력 : 2011-08-06 00:26:04 수정 : 2011-08-06 00:26:0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1년 8개월 전쯤 중국의 한 출판사와 계약하면서 굴욕적인 경험을 했다. 최근 펴낸 ‘논어, 세 번 찢다’와 관련해서다. 리링의 다른 책 3권도 묶어 4권을 동시에 계약을 추진했는데 저자인 리링 베이징대 교수는 시큰퉁한 반응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한국의 출판사에서 네 권씩이나 내겠다고 달려들었으니 의구심이 들었을 것이다. 답답한 심경을 억누르고 베이징대 교수로 있는 황종원 선생(‘논어, 세 번 찢다’의 번역자)에게 리 교수를 만나봐 달라는 부탁을 넣었다. 그런데도 리링은 바쁘다는 이유로 만나주지 않았다. 한참을 이메일 공세를 퍼부은 후에야 어찌어찌 계약이 성사됐다. 케임브리지대출판부 수준의 높은 인세율에, 손자 주석서인 ‘병이사립(兵以詐立)’은 번역을 검토받는다는 조건이었다. “한국에서 이 책을 번역할 사람이 있냐?”며 비아냥하듯이 물어봤다고 에이전시로부터 전해 들었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당연히 비참했고 자존심 상했다. 하지만 번역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근거 있는 우려였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병이사립’은 ‘손자병법’을 밀도 깊게 파고든 주석서이면서도, 서양의 이론까지 동원한 인문서인데 번역자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고문에 정통한 병가 전공자이면서 서양전쟁론까지 섭렵한 ‘이상적인 번역자’는 찾기가 어렵다. 또 자조감이 들었다.

현재 4권 중 3권의 번역이 끝났고 1권은 나왔다. 내가 ‘리링 저작선’을 펴내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삼고학(고고학, 고문자학, 고문헌학)의 대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책들은 ‘읽을 수 있는 주석서’이기 때문이다. 주석서이면서 동시에 인문교양서이기는 쉽지 않다는 걸 독서가들은 알 것이다. 고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주석서는 대중들이 쉬이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늘 머리와 꼬리가 잘린 학설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린다. 리링의 책들은 주석을 주석의 위치에 놓지 않고 본문으로 끌어올려 글맛 충만하게 요리하고 있다. 이런 책은 독자들이 주석서에 다가서는 기회를 제공한다. 분명 드문 기회다. 그의 책들을 통해 우리의 고전읽기 문화가 한층 깊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김민주 '청순 매력'
  • 김민주 '청순 매력'
  • 노윤서 '상큼한 미소'
  • 빌리 츠키 '과즙미 폭발'
  • 임지연 '시크한 가을 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