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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동네 산책]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

입력 : 2011-09-09 18:58:23 수정 : 2011-09-09 18: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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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집으로 가는 길’을 읽은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시에라리온의 소년병 출신 이스마엘 베아가 지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소설이다. 아프리카는 더 이상 동물의 왕국도, 미지의 세계도 아니다. 이제 우리는 안다.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는 걸…. 하지만 피 묻은 역사를 걸어가는 그들의 비명은 아직 여기 대한민국엔 들리지 않는다. 그 책을 읽었을 때, 또 그 영화를 봤을 때, 지면과 스크린에만 담을 수 있는 잔혹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한국전쟁을 담은 영화는 이토록 잔인하지 않았으니 나는 참혹한 전쟁을 잘 모를 것이다. 그래서 전쟁이 그저 그런 슬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을 읽고 얼마 되지 않아 필자는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실제로 시에라리온에 갔었다.

아프리카의 흙이 왜 유난히 붉은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간 것은 아니다. 그 땅에 뿌려진 숱한 죽음을 모르고 갔다. 책은 책이니까…. 책으로만 경험했으니 피상적인 지식이라고나 할까. 시에라리온에 도착하고 나서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터뷰를 했다. 이중 통역으로 인해 분명한 의사전달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의 분노가 무엇인지, 무얼 말하고 싶은 것인지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었다. 입을 열 때마다 자갈을 한 뭉치씩 내게 던지는 것 같았다. 살인 트럭이 질주하고 광란의 총성과 비명이 울려 퍼졌던 비극의 10년. 투표를 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손목을 마구잡이로 잘랐다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이 전쟁 박물관처럼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유 없이 잘려져 뭉툭한 손목을 내미는 아이들에게, 너희에 대해 책에서 읽었지만 믿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전쟁의 당연한 결과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이국의 검고 가난한 현실이 보였다. 어떤 책이 지어낸 쇼킹 아프리칸도 아닌, 사람이 보였다. 너무도 슬프고 어두운 현실이 지구촌에 실재한다는 나만의 ‘새로운 사실’을 얻었다. 책동네 산책 독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이 글을 올린다.

이수연 KBS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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