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소운영 조폭들도 224억 빌려… 경찰, 임직원 조사 최근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제일저축은행이 강남의 유흥업소 업주들에게 1000억원대의 부실 대출을 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업주가 종업원들에게 계약금조로 주는 선불금인 일명 ‘마에킨’(前金) 지급서류만 보고 심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거액의 돈을 선뜻 빌려준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30일 제일저축은행 전무 유모(52)씨 등 임직원 8명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연 이율 18∼23%의 ‘강남 소재 유흥업소 특화상품’이라는 대출 프로그램을 운용하면서 2009년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국 73개 유흥주점의 업주와 바지사장 등 94명에게 모두 1546억원을 불법 대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이들은 업주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해당 업주의 재산상태나 채무상환능력, 업소 현황 등에 대한 현장 실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때로는 신용조사서를 허위로 꾸미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선불금 지급 서류도 가짜로 작성되거나 액수가 부풀려진 일이 많았다. 강남의 A유흥주점 업주 허모(49)씨는 2009년 7월 종업원 30명에게 선불금 23억9000만원을 줬다며 채권서류를 꾸며 저축은행에 제출하고 30억원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허씨가 종업원들에게 실제 지급한 선불금은 이 중 일부에 불과했다. 종업원들은 업주 요구대로 허위 채권서류를 써 줬다가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업주가 이 서류를 담보로 받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채무 변제의무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경찰 관계자는 “업주의 대출을 위해 허위로 선불금 지급 채권서류를 써 준 종업원만 수백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허술하게 대출되면서 업주들의 채무도 거의 상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집계 결과 대출금 1546억원 가운데 변제된 금액은 325억원에 불과했다. 대출받은 73개 업소 가운데 연체 없이 정상 영업 중인 곳은 13곳뿐이다. 경찰은 이 같은 수법으로 돈을 빌린 유흥주점 업주 등 94명은 사기 혐의로 입건하고, 대출 알선 브로커로 활동하며 30여개 업소에서 7억여원의 수수료를 받은 김모(56)씨를 검거했다. 양은이파와 OB파 등 조직폭력배들도 8개 업소를 운영하며 모두 224억원을 대출받는 등 불법 대출에 가담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결제권자인 이용준 제일저축은행장(구속)이 이번 부실 대출에 관여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저축은행비리합동수사단과 일정 조율을 거쳐 직접 조사할 예정이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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