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다가 이 작품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특수효과를 담당했던 더글러스 트럼블이 1982년 ‘블레이드러너’ 이후 거의 30년 만에 특수효과로 컴백한 작품이기도 했다. 클래식의 적극적 활용, 우주의 침묵, 그리고 같은 공간 안에 다른 시간대의 개인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설정은 확실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의 교집합 점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놀라운 영상미가 전개된다.
영화는 구약성서 욥기의 구절로 시작한다. 주인공 잭 오브라이언(Jack O’Brien)의 이름 앞머리를 따면 역시 욥(Job)이 됐다. 하지만 그는 욥만큼 깊은 신앙심을 갖지는 않았고, 때문에 이는 믿음의 깊이보단 인간의 왜소함을 상징하는 의미로 주어진 이름 같았다. 이 왜소함을 한층 강조라도 하듯, 영화 초반부는 우주와 지구의 생성에 관한 수려한 이미지들로 전개된다. 그리고 이 ‘생명의 나무’ 계보 말미에 인간이 놓여진다.
성공한 중년 잭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붙잡혀 있다. 그리고 1950년대의 텍사스를 바탕으로 그의 어린 시절이 펼쳐진다. 힘을 중시하는 강압적인 부친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감싸는 모친, 상반된 부모 사이에서 자란 형제들은 점차 순진함을 잃어간다. 보편적인 자식과 부모관계는 우주(혹은 신)과 인간의 관계로 대치되기도 한다.
대사가 적은 만큼 다양한 곡들이 영화 내내 흐른다. 스메타나의 ‘몰다우’와 베를리오즈의 ‘레퀴엠’이 우주를 배경으로 삽입되며, 브래드 피트는 교회 오르간으로 바흐의 푸가를, 그리고 자택에서는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각각 연주한다. 차남과 아버지 브래드 피트가 테라스에서 쿠프랭의 ‘신비의 방벽’을 피아노와 기타로 이중주하는 모습 또한 무척 아름답다. 비교적 현대의 작곡가들인 존 테버너, 즈비그뉴 프라이즈너, 기야 칸첼리 등의 곡들이 쉴틈없이 이어진다. 프란체스코 루피카의 경우 이전작 ‘씬 레드라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이름이었다.
삽입곡 이의외 곡들은 현재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작곡했다. 그가 주조해낸 특유의 미니멀하고 서정적인 선율들은 마음을 움직이는 일종의 최면효과로 작용했다.
거대한 우주의 역사와 한 가족 구성원의 사정을 병치시켜 놓는 것은 마치 신의 시점으로 작품을 경험케 만든다. 대우주의 관점에서 개개인의 고뇌나 운명 따위는 옳지도 그릇되지도 않다. 그저 자유롭게 흘러나갈 뿐이다.
만일 이 거대한 우주 속 티끌만 한 지구 별에 태어나 성장하는 것이 기가 막힌 우연이 아니라면, 아득하게 거대한 의사에 의해 우리가 활용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몇몇 사람은 그 거대한 의사를 ‘신’이라 부를 것이다. ‘욥기’에서처럼 신(혹은 우주)은 끊임없이 침묵할 것이며, 살아나가야만 하는 운명 앞에 무력한 인간의 해답 없는 물음은 반복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상실감’은 인류가 숙명적으로 짊어져야만 하는 숙제나 다름없다. 비록 인생이 짧고 무상할지라도 자연의 섭리, 그리고 한없이 가녀리고 고귀한 빛과도 같은 인간의 존재는 이렇게 끊임없이 추적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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