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는 우리에게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과 다름없다. 전문가들은 ISD 규정을 꼼꼼히 따져 문제될 게 있다면 앞으로 미국과 협의 과정에서 우리 입장을 관철하고 국내 각종 정책과 제도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 FTA 반대론자들은 한·미 FTA가 기존 FTA 또는 BIT와 달리 ISD 대상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했다고 지적한다. 싱가포르나 칠레와 맺은 FTA에서는 투자협정상 의무위반만을 분쟁 대상으로 규정한 데 비해 한·미 FTA에서는 투자인가 위반, 투자계약 위반도 분쟁 대상에 포함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피소 위험이 커져 공공정책을 펼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투자자 적격을 따질 절차를 진행할 수 없고 설립 전 투자까지 대상에 포함된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맺은 FTA와 BIT 85개 중 81개에 이미 ISD가 포함된 만큼 한·미 FTA에서 ISD를 삭제하더라도 미국 투자자가 다른 국가에 설립된 지사를 활용해 우리 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신희택 교수는 “아무리 좋은 공공정책일지라도 정부의 정책 추진이 과격하거나 절차가 법에 어긋났다면 국내법적으로도 헌법재판소나 법원에서 위헌 또는 위법한 조치로 판단된다”면서 “이제는 한·미 FTA 대응역량을 강화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로펌인 태평양의 김갑유 변호사는 “ICSID가 워싱턴에 있어 신뢰할 수 없다면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중재로 해도 되고 파리에 있는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을 이용해도 된다”고 말했다.
UNCITRAL에는 별도 중재기관이 없어 UNCITRAL 중재규칙만 따를 뿐 나머지 중재지와 중재인 선정 등은 양 당사자가 합의해 하도록 돼 있다.
정부는 미국 투자자가 상대국 정부를 제소한 사건 108건 중 승소한 건은 15건으로, 패한 건수(22건)보다 적었다는 점도 내세운다. 승소 판례도 소요사태 시 외국인 투자 보호에 나서지 않거나 중앙정부가 허가한 사업을 지방정부가 박탈하는 등 비합리적인 대우를 한 경우였다.
중재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가 주민 표를 의식해 ‘표퓰리즘식’ 사업을 추진하면서 외국인 투자 유치에 급급해 무리한 조항을 계약서에 넣었다가 중앙정부에 의해 제동이 걸리는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지자체의 외국 투자 사업 시 사전에 중앙 정부와 협의하고 법률적인 검토를 철저하게 거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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