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학기에 입학한 4월 어느 날 보스턴에 마지막 눈이 내렸다. 15명이 수강하는 작은 이론 수업에 반 이상의 학생이 수업에 결석했다. 교수님은 우리를 보더니 오늘 결석생도 많은데 학교 앞 작은 바에서 와인을 곁들인 음악 이야기를 하자고 제의하셨다. 교수의 제의에 모두 동심의 어린이들처럼 폴짝 뛰어나간 것은 물론이다.
당시 와인을 처음 마신 나는 둥근 유선형의 여성스런 잔에 담긴 보랏빛 와인이 어찌나 신기하고 예쁘게 보였던지…. 3달러 정도의 씁쓸한 맛없는 와인이었지만, 재즈의 대가이신 교수님과 세계 각국에서 모인 클래스 메이트들, 학교 앞 작고 허름한 바의 주크 박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의 선율은 그 해의 마지막 4월의 눈과 함께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세월이 제법 흘러 지금은 훨씬 비싸고 맛난 고급 와인을 즐길 수 있지만, 난생 처음 마셔본 싸구려 와인의 첫 경험과 비교할 순 없을 것 같다. 재즈와 와인을 결합한 첫 경험은, 겨울과 하얀 눈까지 오버랩되면서 나를 더욱 행복한 멋에 취하도록 유도한다. 캐럴 송이 들려오는 지금 책 한 권 펼쳐놓은 채 눈발 흩날리는 창가를 응시하며 한 해를 보내는 사색에 젖는다.
주소은 전 우송정보대 생활음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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