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과 스위스 유학
김정은은 김 위원장의 셋째 아들로 1982년 1월8일 김정일과 무용수 출신의 고영희(1953∼2004)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출생에 대해서는 1983년에 태어났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되지 않는다. 그는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한·미 정보당국에서 그의 이름을 정운(正雲)으로 파악할 만큼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작년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운(雲)이 아닌 은(恩)으로 한자 표기를 밝히면서 이름 논란은 일단락됐다.
그는 1998년 9월부터 2000년 가을까지 스위스 베른의 리베펠트-슈타인 횔츨리 공립학교에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이 같은 사실이 전해지자 학교 측은 기자회견을 열고 그가 “1년간 외국어교육학생반에 있다 6학년 때 정규반으로 옮겼으며, 그 후 7학년과 8학년을 이수하고 고등학교 단계인 9학년에도 일정기간 다니다 학교를 그만뒀다”고 밝혔다. 김정은의 재학 당시 수학교사였던 브르 교장은 “(학생들과) 잘 어울렸으며 부지런하고 야심에 차 있었다”면서 “그의 취미는 농구”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해 스위스의 한 시사주간지에는 그의 청소년 시절을 지켜봤다는 교사와 학생들의 증언이 실리기도 했다. 베른국제학교 교장이던 다비드 카틀리는 김정은에 대해 “솔직한 아이였고 친구들 간의 다툼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중재하는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특히 “친구들 중에 미국 외교관 자녀가 많았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동창생은 “북한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나라에서 온 학생과도 잘 지냈다”고 전하기도 했다. 스위스 유학 경험에서 쌓은 국제적 감각을 근거로 그가 앞으로 국제사회에 개방카드를 들고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내부의 권력투쟁
김정은은 2002년부터 2007년 4월까지 5년제 군간부 양성기관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포병학과를 다녔다. 그는 대학 시절 포병 지휘관에 이어 연구원까지 5년 과정을 모두 최우등으로 졸업해 포병전에 능하다고 일본 언론이 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2년간 개별교습을 받았다고 말한다.
2009년 4월 평양 중구역에 자리한 특각에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들이닥쳐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이 주로 머물던 이곳을 수색했다. 주로 해외에 체류하는 김정남이 평양의 거점으로 삼아 주요 인사들과 어울리던 곳이다. 보위부를 동원한 사람이 김정은으로 알려지면서 형제 사이에 권력투쟁이 이뤄지고 있음을 암시했다.
그는 또 ‘봉화조’라는 일종의 사조직을 등에 업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25일 미국 워싱턴타임스 보도로 북한 최고위 권력자 2세들의 모임인 봉화조가 드러났다. 이 봉화조의 리더는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의 아들 오세원으로 미 재무부는 분석했다.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오를 당시 그와 함께 부위원장에 오른 인물이 있다. 북한 군 최고 책임자인 리영호(69) 정치국 상무위원 겸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이다. 김정은 체제의 군부 핵심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김정은이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은 작년 9월27일 차수로 승진했다. 대장(별4개)은 18명에 달하지만 차수(큰별1개)는 7명에 불과하다.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65) 당중앙위 경공업부장과 남편 장성택(65) 정치국 후보위원 겸 국방위 부위원장도 당 안팎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8년 김정일이 건강 이상으로 쓰러졌을 당시 후계체제 구상을 담당했고,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맡아왔다. 일부에서는 장성택이 김정은을 꼭두각시로 만들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북한 체제에서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이 밖에 군부의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연평도 포격을 주도한 김격식(67) 4군단장 등이 김정은의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다. 장성택 라인의 최룡해(62) 노동당 비서, 2002년 10월 한국을 방문했던 문경덕(54) 등도 거론된다. 이들 대부분은 이번 김정일 장의위원회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앞으로 20대 후반의 김정은이 고령의 배후세력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