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좌천·딸 자살 등 아픔 겪어
작년 여성으론 첫 '대장' 칭호
'김정은 혈육'으로 후견인 부상
2003년 9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1기 1차 회의에 참석한 대의원들의 기념촬영을 마지막으로 김경희(65) 노동당 경공업부장은 종적을 감췄다. 불화설,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설 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이듬해 남편 장성택(65) 당 행정부장이 숙청당해 지방으로 좌천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6년 8월에는 외동딸 장금송(당시 29세)이 프랑스 유학 중 자살했다.
북한 매체에서 모습을 감춘 그의 행적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성택과의 불화, 건강 악화, 외동딸의 자살 등 여러 이유가 얽히고설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경희는 2008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사태를 수습하면서 재기에 성공한 것으로 관측된다. 김 위원장은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김경희를 어릴 적부터 예뻐했고, ‘마지막에 믿을 사람은 혈육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김경희는 2009년 6월 김정일의 함경남도 함주군 협동농장 현지지도를 수행하면서 공식적으로 복귀를 알렸다. 권양주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모를 모두 잃은 김정은은 친족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자신의 권력행사에 위협이 되지 않는 김경희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는 광복 직후인 1946년 5월30일 김일성 주석과 김정숙의 셋째로 태어났다.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김정일과 우애가 유난히 좋았다고 한다. 괄괄한 성격인 그는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함께 다닌 동기생 장성택과 사랑에 빠졌다. 러시아 모스크바대학에서 함께 유학했다. 김정일의 처조카 고 이한영씨가 탈북해 쓴 책에 따르면 김일성이 장성택을 원산경제대학으로 보내버리자, 김경희는 주말마다 내려가 밀린 빨래를 해주고 올라올 만큼 대차고 고집이 셌다. 일설에는 김정일이 이혼녀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낳은 첫째 아들 김정남을 김일성 몰래 숨겨준 것이 김경희였다고 한다.
김정일에게 최후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김경희였고, 아들 김정은에게 후계자리를 넘겨주면서 그에게 막중한 책임을 맡긴 것으로 보인다. 작년 9월 김정은과 더불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인민군 대장을 달았다. 아들 김정은을 잘 지켜달라는 김정일의 뜻이 담긴 조치로 읽힌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9일 “김경희는 결국 김정은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혈족”이라며 “김정은 입장에서는 자신과 협력하면서도 권력을 빼앗을 위험이 가장 낮은 인물로 바라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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