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역사 지닌 실내악 국제음악제
음악감독 미셸 제의로 한국서 개최 소설가 로망 롤랑과 ‘주라기 공원’의 소설가이자 영화 프로듀서 마이클 크라이튼, 기호학자이자 ‘장미의 이름’을 지은 움베르토 에코…. 우연히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의 입에서 나온 소설가들의 이름이다. 주요 작품과 작품 세계, 그의 철학으로 확대되며 하나의 숲으로 커지기도 한다. 인터뷰는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작곡에서 음악으로, 문학으로, 철학으로, 다시 음악으로 항해를 이어갔다. 대중 문화와 대중 코드 문제에도 잠시 돛을 내린다.
1년에 3, 4곡 정도를 느리게 쓰는 류재준씨는 “가만히 앉아서 쓰는 것은 죽은 음악이라고 생각하기에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경험하며 오랫동안 생각을 곰삭인 뒤에 곡을 쓴다”고 말한다. 오푸스 제공 |
프랑스의 유명한 실내악 국제 음악제인 ‘카잘스 페스티벌’을 한국에 유치한 작곡가 류재준(42)씨의 얘기다. 그가 결성한 실내악 앙상블 오푸스는 27일부터 나흘 동안 서울 등 4개 도시에서 ‘프라드 카잘스 페스티벌 인 코리아 2012(Prades Casals Festival in Korea 2012)’를 연다. 카잘스 페스티벌은 프랑코 독재 정권을 피해 망명한 스페인 출신의 첼리스트 카잘스가 1952년 프랑스 남부 프라드에서 연 음악제로 지금까지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 루돌프 제르킨 등 명사들이 참여했다. 경기도 분당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페스티벌이 올해 60주년을 맞으며 앞으로 아시아에서 열리길 희망했어요. 도쿄와 베이징 등에서 유치를 희망했지만 오랫동안 함께한 페스티벌 음악감독 미셸 레티엑이 저에게 제의해 유치하게 된 거죠.”
올해는 투어 형식으로 페스티벌을 알리고 내년부터 한 도시에서 영구히 진행된다. 27일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시작해 28일 현대예술관, 29일 의정부예술의전당, 3월1일 예술의전당에서 차례로 열린다. 앞서 24일 주한 프랑스문화원에서는 카잘스 페스티벌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회도 열린다.
“후원자를 얻는 게 힘들지만 의정부시와 문화예술진흥위원회 등에서 많이 도와줬어요. 이전에는 많은 실내악 공연이 모여 연주만 하는데, 저희는 ‘연습하지 않은 음악은 관객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마지막까지 철저히 연습할 생각입니다. 완벽한 실내악을, 최고 수준의 음악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번 페스티벌에는 미셸 레티엑을 비롯해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 바이올리니스트 제라르 풀레, 비올리스트 하르트무트 로드가 참여한다. 모두 ‘일가’를 이룬 음악가다. 슈베르트와 모차르트의 곡은 물론 이신우와 진규영 등 국내 작곡가 작품이 연주된다. 한국 연주자로는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과 김소옥, 첼리스트 송영훈, 피아니스트 박종화 등이 무대에 오른다.
“자국 중심의 도쿄음악제나 베이징 페스티벌 등과 달리 페스티벌이 세계인들과 함께 호흡(그는 ‘범용’이라는 말을 사용했다)하는 무대가 됐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한국 음악가들이 소개되길 기대하고요.”
서울 현대고 3학년 때 작곡가를 꿈꾼 그는 서울대 작곡과와 폴란드 크라코프 음악원에서 한국과 폴란드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강석희와 크쉬슈토프 펜데레츠키를 사사했다.
“강 선생에게는 음악을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방법과 작곡가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어요. 그는 개인 레슨을 전혀 하지 않고 음악만을 위한 삶을 살았죠. 펜데레츠키에게선 작곡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한다는 걸 배웠고요. 로스트로포비치나 미셸 레티엑 등을 만나는 등 많은 경험을 하게 했어요. 지금 인맥의 80%는 그때 만들어졌죠.”
그는 2004년 ‘타악기를 위한 파사칼리아’로 유럽 무대에서 인정받기 시작했고 2008년 폴란드 베토벤 음악제에서 연주된 ‘진혼교향곡’으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첼로 협주곡(1997)과 바이올린 협주곡(2005), ‘진혼교향곡’(2007) 등이 있다. 바그너-슈트라우스-시마노프스키- 펜데레츠키로 이어지는 독일 낭만파 계보를 잇는 류씨는 “하고 싶은 얘기를 청중과 연주자와 소통하고 배려하는 방식으로 풀어내려 한다”고 말했다.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과 ㈜오푸스 대표이지만 폴란드 고주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에서 3개월 정도만 생활하고 나머지는 폴란드 고주프 등 해외에서 산다. 삶과 음악은 공항이나 역에서 호텔로, 리허설 무대로, 연주회장으로 뿌려진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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