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카라얀의 고향…‘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
알프스의 빙하가 모여 이룬 76개의 호수
하늘이 풍덩 빠져버린 듯한 물빛 일렁 어느 불경한 사랑 이야기 미라벨 정원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 담황색 고풍스런 건물들이 새벽 비에 젖어드는, 여기는 잘츠부르크. 전날 밤늦게 도착한 나는 신시가지의 작은 호텔에 방을 잡았었다.
빈에서 차로 3시간 거리. ‘소금의 성’이란 뜻의 잘츠부르크는 알프스 산맥의 북쪽 기슭, 독일 국경 가까이에 있는 잘자흐 강가에 자리하고 있다. 인근 잘츠카머구트에 기원전 2000년 전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소금광산 마을이 있는데, 거기 세월에 갇힌, 육지에 갇힌 바다 소금이 이 도시의 살림을 살렸으니 그런 이름이 붙은 모양이다. 미라벨 정원과 산 위의 요새, 모차르트가 태어나고, 카라얀이 태어나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가 된 곳. 그 잘츠부르크가 말간 얼굴로 내 앞에 있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의 미라벨 정원을 향해 걸었다.
그리스 신화 속의 영웅들이 둘러선 정원에는 기하학적 문양으로 꽃들을 배치한 화단과 분수가 있고 그 옆에 미라벨 궁전이 서 있다. 400년 전쯤, 잘츠부르크의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는 살로메 알트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성직자는 결혼할 수 없다는 규율을 깨고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15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들에게 이 정원과 궁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톨릭 교단의 혹독한 비난과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체포되어 호엔 잘츠부르크 성에 감금된 채 생을 마치게 되었다.
살로메도 성에서 쫓겨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다고 한다. 대주교였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고, 아이들의 아버지였던 디트리히. 그가 느꼈을 번민을 나는 짐작조차하기 어렵다. 자신이 주인이던 성에 죄수가 되어 갇힌 채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는 세속적 욕망과 사랑에 눈멀었던 자신을 책망했을까, 혹 신의 이름을 불렀을까.
정원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니콘과 페가수스 동상이 있고, 술래잡기를 하기에 딱 좋을 작은 미로 공원도 있다. 누군가에겐 운명이었을, 타인들에겐 그저 불경이 되었을 사랑 이야기가 서린 미라벨 정원의 벤치에 앉아 나는 자욱한 꽃향기를 맡았다.
미라벨 정원을 나와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의 골목으로 들어서니 곧 게트라이데 거리가 나왔다. 예쁘고 재치 있는 철제 간판들이 집집마다 달려 있는 이 골목은 카페와 기념품점, 옷가게가 늘어서 있고,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먼 도시들에서 날아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괜히 흐뭇해진 나는 모차르트 초콜릿을 사 먹으며 레지덴츠 광장의 분수에 기대어 사람들과 피아커(관광 마차)와 거리의 악사들을 구경했다.
구시가지에는 천 년도 넘는 이 도시와 역사를 함께하는 여러 유적들이 아직도 의연하게 서 있다. 그중 잘츠부르크 대성당은 744년에 건립되었다가 후에 로마네스크 식으로 재건한 것으로, 독일까지 가톨릭을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역사적인 성당이라고 한다. 1200년의 역사, 그리고 6000개의 파이프로 만든 유럽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끝까지 세지도 못할 거면서 어느새 하나, 둘, 하고 은빛 파이프를 손으로 짚어 보게 된다. 모차르트가 오르간을 연주했을 때는 천사들도 잠시 귀 기울여 듣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흰 대리석 돔을 통과한 오래된 햇살과 서늘한 어둠속에서 나는 잠시 쉴 수 있었다.
성당을 나와 언덕 쪽으로 오르니 해발 120미터의 호엔 잘츠부르크 성에 순식간에 데려다 주는 푸니쿨라(케이블카) 승선장이 나온다. ‘철의 요새’라 불리는 이 성도 1077년부터 짓기 시작해 거의 600년이 걸려 지었는데, 한 번도 외적에 점령당한 적이 없다고 한다.
천 년의 세월을 버틴 높은 성채와 이끼 낀 담장, 먹물이 갈앉은 듯 검게 변한 나무문을 나는 믿기지 않는 심정으로 만져 보았다. 꽤나 긴 줄을 선 끝에 내부의 무기 박물관과 고문실, 주교의 방 등을 둘러볼 수 있었고, 옥상에 올라 잘츠부르크 시내를 한눈에 둘러 볼 수 있었다.
어느새 낮달이 비죽이 나와 청동빛 돔 지붕을 인 옛 건물들과 순하게 흐르는 잘자흐 강을, 여행자들의 긴 그림자를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난간에 기대어 그 풍경을 마음에 깊이 새겨두었다.
샤프베르크 산꼭대기, 증기 기차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을 지나고 있다. |
말끔히 갠 다음날은 잘츠부르크에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잘츠카머구트를 찾았다. 알프스의 빙하가 모여 이룬 76개의 호수와 험준한 산들로 이루어진 이 지역은 어디를 가거나 천상의 그림 같기만 하다. 산 아래 은빛 햇살을 튕겨내는 호수와 요트들, 물가의 낮은 집들, 젖소들이 졸린 듯 앉아 있는 푸른 풀밭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나는 수심이 백 미터가 넘는다는 볼프강 호수를 유람선을 타고 먼저 둘러보았다. 배에서 내린 뒤에도 하늘이 풍덩 빠져버린 듯한 물빛과 일렁이는 산그늘, 백조들을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보며 앉았다가 샤프베르크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증기 기차를 타기로 했다. 기차는 한 시간에 한 번 운행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사람들로 몹시 붐볐다.
두 량짜리 새빨간 증기 기차는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산길을 하얀 연기를 뿜으며 달려간다. 덜컹거리는 차창으로 에메랄드빛 호수가 넘쳐 흐르더니 산과 호수, 하늘이 마침내 같은 빛깔로 어우러진다. 태엽이 풀리듯 마음이 풀려서 함께 기차를 탄 사람들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연신 탄성을 질러댔다.
“당케 쇤!” 종착역에서 기관장이 인사하며 문을 열어주자 얼음을 품은 듯 알싸한 공기가 먼저 맞아 주었다. 맞은 편 산꼭대기에는 말로만 듣던 알프스의 만년설! 절벽 아래로 세상이 까마득하다. 나는 날렵하게 날아가는 머리 위의 매를 바라보다가, 정상의 휴게소에서 에스프레소(해발 1780미터의 산꼭대기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다니!)를 시키고 나무 탁자 하나를 차지했다.
그때, 같이 기차를 타고 온 동양 여자 한 명이 혹시 한국 사람이냐고 내게 물어 보는 것이다. 맞다고 하니 어느 거리에서 부딪쳤을 것만 같은, 낯익은 그 얼굴이 개었다 흐려졌다 한다.
“반가워요. 나는 몽골 사람이에요. 남편은 독일인이고요.” 고향이 같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녀가 몽골 사람이라니! 깜짝 놀란 내게 그녀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덧붙였다.
“오빠가 서울에 살고 있어요. 거기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래서 반가워서….”
그 눈빛에는 바다가 갈라놓고, 시간이 갈라놓은 피붙이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 있었다. 그리움의 징후 같은 것, 쓸쓸함의 빛깔 같은 것들은 그렇게 숨기려고 해도 배어나오게 마련일까. 나는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누군가 앉았다 떠난 자리에 남아 있던 따스한 온기. 어쩌면 삶이란 것이 그렇게 자신의 온기를, 흔적을 타인에게 전하고 가는 짧은 여정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온기를 찾기 위해, 혹은 잊기 위해 떠나는 것이 여행일지도 모르고.
멀리 눈 쌓인 알프스의 꼭대기에서 순도 백 퍼센트의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바람에 온몸을 맡긴 채 산 아래 작은 마을을, 그리운 것들의 아련한 형체를 오래 바라보았다.
◆ 가볼만한 곳
■잘츠부르크 음악축제:해마다 7, 8월에 열리는 세계적 명성의 음악 축제로 빈필과 베를린필 등 세계적인 음악 단체가 참가하고 세계 각국의 저명인사들이 방문한다. 오페라, 연극,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가 날마다 펼쳐지기 때문에 여름이면 이 축제를 즐기러 오는 인파로 도시는 들썩거린다. www.salzburgerfestspiele.at
■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이드가 동행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를 통해 잘츠부르크 곳곳과 잘츠카머구트까지 편하게 둘러볼 수도 있다. 인터넷으로 예약 가능하고, 호텔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예약이 가능하다. 미라벨 궁전 앞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다. www.panoramatours.com
■페스툼구스 야외 레스토랑:호엔잘츠부르크 성의 푸니쿨라 승선장 앞에 있는 페스툼구스 야외 레스토랑은 전망이 뛰어나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놓치기 쉬운 곳이지만 연인들을 위해 강력 추천.
■할슈타트 소금 광산 투어:지하 700미터까지 내려가는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광산. 등산 열차, 슬라이드, 갱도 열차까지 타고 둘러보는 흥미로운 투어이다. 아름다운 할슈타테 호수와 함께 둘러보면 좋은 코스. 그러나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는 투어도 없고 마을이 거의 문을 닫는다. www.badischl.at
■잘츠부르크 음악축제:해마다 7, 8월에 열리는 세계적 명성의 음악 축제로 빈필과 베를린필 등 세계적인 음악 단체가 참가하고 세계 각국의 저명인사들이 방문한다. 오페라, 연극,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가 날마다 펼쳐지기 때문에 여름이면 이 축제를 즐기러 오는 인파로 도시는 들썩거린다. www.salzburgerfestspiele.at
■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이드가 동행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를 통해 잘츠부르크 곳곳과 잘츠카머구트까지 편하게 둘러볼 수도 있다. 인터넷으로 예약 가능하고, 호텔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예약이 가능하다. 미라벨 궁전 앞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다. www.panoramatours.com
■페스툼구스 야외 레스토랑:호엔잘츠부르크 성의 푸니쿨라 승선장 앞에 있는 페스툼구스 야외 레스토랑은 전망이 뛰어나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놓치기 쉬운 곳이지만 연인들을 위해 강력 추천.
■할슈타트 소금 광산 투어:지하 700미터까지 내려가는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광산. 등산 열차, 슬라이드, 갱도 열차까지 타고 둘러보는 흥미로운 투어이다. 아름다운 할슈타테 호수와 함께 둘러보면 좋은 코스. 그러나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는 투어도 없고 마을이 거의 문을 닫는다. www.badischl.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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