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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동네 산책] ‘이슬람 편견’을 벗자

입력 : 2012-02-17 17:53:17 수정 : 2012-02-17 17: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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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맨 끝에 산이 많고 왕이 많은 한 나라가 있는데 신라라고 불린다.’ 1100년 전 이슬람학자 알 마스오디(∼965년)가 쓴 책에 있는 내용이다. 신라 귀족들은 이슬람권에서 물밀듯이 들어온 모직물과 향료, 에메랄드를 사느라 혈안이 됐다. 신라 흥덕왕은 이 사치품들을 쓰지 말도록 금지령까지 내린다(834년). 고려 현종 때 이슬람 상인 백 명이 수은과 몰약 등을 바쳤고 왕은 비단을 내렸다(1024년). 덕수 장(張)씨의 시조인 장순룡은 고려 충렬왕 부인인 원나라 공주의 시종으로 따라왔다가(1274년) 고려에서 높은 벼슬까지 지냈다. 고려가요를 대표하는 쌍화점은 이슬람인이 경영하는 떡집에서 벌어진 일들이 노래로 전승된 것이다. 개경에는 이슬람 사원도 있었다.

이슬람과의 문명 교류는 서구와는 전혀 달랐다. 140여 년 전, 개항이라는 명분아래 영토와 자원 약탈을 목적으로 함포를 쏘아댄 서구 제국주의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기독교 선교사들은 교회 구출을 빌미로 프랑스 극동함대까지 끌어들이기도 했다. 임란 때 예수회 신부들은 왜병과 함께 조선 땅을 침범하고 참혹한 살육 현장에서 왜병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했다.

반면 이슬람과의 교류는 전쟁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세종 때 만들어진 우리나라식 달력인 칠정산외편은 이슬람 역법을 따랐다. 도자기의 안료인 회청도 도입됐다. 역관 시험과목에는 당시에 이미 이슬람화됐던 지금의 중국 신장의 위구르 언어가 포함됐다.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이 대궐에서 코란을 암송하며 세종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도 했다. 이슬람이 우리 역사와 얼마나 밀접한지, 이슬람이 어느 정도 평화의 종교인지, 그리고 서구가 주도하는 근·현대사 속에서 이슬람이 얼마나 왜곡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서구는 그들의 식민지였던 중동과 아프리카의 민주화 바람마저 친서방은 철저히 정권 옹호로, 반서방국은 반군 지원에 나서고 있다. 우리 정치권은 막대한 이슬람의 오일달러를 들여올 수쿠크법(이슬람채권법)도 특정 종교를 의식해 가로막고 있다.

이슬람 편견을 벗기 위해서라도 소위 지도층부터 일독을 권한다.

김명성 KBS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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