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상담기관에 처벌 여부 문의 사례 늘어
처벌기준도 애매… "자진신고자 관용 베풀어야" 중학교 3학년 선배에게 돈을 뜯기던 영진(가명·15)이는 최근 2학년 친구 10여 명과 함께 경찰에 신고하려다가 포기했다. 선배들에게 얻어맞을 때는 “너무 힘들다. 신고하자”고 다들 뜻을 모았다가도 경찰서 앞에만 가면 용기가 사라지는 바람에 두 번이나 발걸음을 되돌렸다. ‘일진’ 선배의 지시에 따라 1학년 후배들로부터 돈을 거둬 상납한 적이 있는데 공범으로 몰릴 수 있다고 걱정한 탓이다.
후배들에게서 금품을 빼앗아 일진들에게 상납하는 중간 학생층을 중심으로 학교폭력 신고의 사각지대가 형성되고 있다. 경찰에 제보했다가 일진과 함께 처벌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제보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근절에서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인 이들 학생들에 대한 선도는 중요한 의미가 있기에 처벌 위주 접근보다는 계도 중심으로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일 경찰과 청소년상담기관 등에 따르면 최근 들어 속칭 ‘2진급’ 학생들이 청소년상담기관에 학교폭력을 호소하며 처벌 여부를 문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의 한 지역 청소년상담기관 관계자는 “상담사례 10건 중 2∼3건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애매한 학생들”이라면서 “경찰에 신고하면 자신들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상담기관에 주로 문의한다”고 말했다.
최근 상담기관을 찾은 김명호(가명·15)군은 “선배들이 중고 체육복을 사라고 강매하는 바람에 일부를 후배들에게 떠넘겼다”면서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했다가 처벌받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경찰서에 못 가고 있다”고 고백했다.
경찰은 이들이 신고하면 일단 죄질을 따져서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일선 경찰 관계자는 “신고를 장려키 위해 2진급이라도 자진신고자는 원칙적으로 입건하지 않고, 범죄혐의도 강도 높게 조사하지는 않는다”면서 “적극적으로 일진의 ‘위세’를 빌려 후배나 동급생의 금품을 가로챈 혐의가 포착된 경우만 처벌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준이 애매해 중간지대에 놓인 학생들은 신고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선배의 지시로 동급생 10명에게서 5만원을 거둬 상납했다는 남경호(가명·15)군은 “당장 경찰에 신고하고 싶지만 처벌이 무섭기도 하고, 1년만 더 참으면 내가 일진이 될 수도 있어서 고민하고 있다”고 상담사에게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청소년 전문가들은 자진신고자에 한해서는 관용을 베풀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청소년 전문가는 “2진급은 순수하게 ‘상납의 중간고리’ 역할만 한 때는 드물고 대부분은 일진에게 상납할 돈 가운데 일부를 착복한 경험이 있다”면서 “2진급이라도 상황에 따라 선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유미 청소년폭력예방재단 학교폭력 SOS지원단장은 “청소년 상담기관들이 학교폭력 신고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과 접촉해 경찰신고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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