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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광장] 과거에 갇힌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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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9-20 23:54:02 수정 : 2012-09-20 23: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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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적 과거사발언으로 대선정국 후끈
딸아닌 대권후보로서 입장 정리했어야
2012년 대선정국에서 5·16과 10월유신이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때문이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아니었다면 이런 퇴행적 과거사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박 후보가 박 전 대통령의 딸이 아닌 대선 후보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정리했다면 이런 소모적인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조남규 정치부 차장
초등학교 졸업식 때 박목월 시인이 지은 육영수 여사 전기를 부상으로 받았다. 그 책을 통해 5·16과 10월유신을 배웠다.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고, 10월유신은 주변 정세의 격동기에 호응한 ‘새로운 출범’이었다. 그땐 그런 시절이었다. 이젠 박정희 정권의 공과를 떠나 5·16은 ‘쿠데타’(군사정변)이고, 10월유신은 ‘헌법 파괴 행위’라는 게 상식적 판단이 됐다. 유신정권의 긴급조치가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마당이고 보면 좌파든 우파든, 민주화 세력이든 산업화 세력이든 이 지점에선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5·16쿠데타로 장면 정권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박정희 정권의 ‘개발 독재’보다 더 내실있는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는 유의 주장까지 자동적으로 정당화되진 않는다. 장면 정권은 국가의 선도(先導)가 필수적인 신생 독립국의 근대적 산업화를 추진하기엔 부적합한 정권이었다. 오죽했으면 당대 지식층을 대표했던 잡지 ‘사상계’가 5·16쿠데타 다음달인 6월호 권두언에서 5·16을 ‘부패와 무능과 무질서와 공산주의 책동을 타파하고 국가의 진로를 바로잡으려는 민족주의적 군사혁명’이라고 규정했겠는가.

고 장준하 선생이 주도했던 사상계 권두언의 평가 그대로 5·16은 “우리들이 육성하고 개화시켜야 할 민주주의의 이념에 비추어 볼 때는 불행한 일이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위급한 민족적 현실에서 볼 때는 불가피한 일”로 보는 게 온당할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10월유신을 통해 형식적 민주주의 체제마저 무너뜨린 채 방위산업을 비롯한 중화학공업 국가로 질주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2차대전 이후 독립한 147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고도화를 바탕으로 한 수출 대국으로 우뚝 섰다. 이런 거대한 성취가 박정희라는 지도자 한 사람의 업적이라고 말한다면 오만한 것이다.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감내한 국민들의 땀과 눈물, 헌신적인 교육열 등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10월유신이 단행되던 당시의 상황은 엄중했다. 미국의 닉슨 행정부는 69년 아시아 우방국들의 국방비 자기 분담을 골자로 한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2년 뒤 약 2만명 규모의 미 7사단이 철수했다. 앞서 68년엔 북한 특수부대인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했다. 이 시점에 한국의 노동집약적 산업 품목의 수출은 한계에 이르렀다. 기업들은 도산 위기로 내몰렸다. 박정희 정권이 선택한 중화학공업 입국의 길은 이같은 안보·경제위기에 대응한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산업화 치적은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여러 차례 인정한 사실이다. 이런 점들을 모두 고려한다고 해도 보수적 헌법학자들조차 초법적 행위로 보는 10월유신이 과연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인혁당 사건이 상징하는 유신정권의 폭압정치 없이는 안보·경제 위기를 넘어설 수 없었는가. 박근혜 후보는 그럴 수 없었다는 입장인 듯하다. 국민 다수가 자신과 같은 생각이라고도 했다. 박정희의 딸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나머지 국민들도 납득할 만한 상식적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박 후보의 국민통합 행보는 그 지점에서 새로 출발해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전에 말했다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속뜻을 국민의 입장에서 새겨보길 바란다.

조남규 정치부 차장 coolm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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