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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빅뱅’ 월드투어 숨은 주역 YG엔터테인먼트 정치영 실장

입력 : 2013-02-20 17:43:10 수정 : 2013-02-20 17: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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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축제무대에 매료 첫 출발
YG와 만나며 K-팝 가수 공연 지휘
‘해외공연 외국 스태프 몫’ 한계 넘어
당당히 토종의 숨은 실력 발휘
“제 꿈은 대한민국 1등이었는데 그것은 작은 꿈이었습니다. 이제는 국내에서 경쟁하려는 마음이 사라졌어요. 전국체전 1등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빅뱅·투애니원 콘서트 등 세계무대에서 성공한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더 나아가야죠.”

정치영(39) YG엔터테인먼트 공연기획실장은 지난해 12개국 24개 도시에서 80만 관객을 동원한 빅뱅 월드 투어의 숨은 주역이다. 그는 2002년부터 YG 소속 가수들의 공연 기획·연출을 총괄했다. 한국 대중음악이 K-팝으로 발전하면서 그가 진두지휘하는 공연의 질은 세계적인 눈높이에 맞춰 높아졌다.

그는 국내 최초로 일부 해외 선진 기술과 악기를 도입해 운용 경험을 쌓았고, 공연 흐름에 스토리텔링을 접목했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 공연 관계자들은 노래·퍼포먼스·영상·조명이 결합한 빅뱅 콘서트에 “최고”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국내 방송사에서 개최하는 비슷한 느낌의 K-팝 페스티벌과는 수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이돌 가수의 공연은 애들이나 좋아하는 거지 뭐”라고 생각할 법한 어른들도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정치영 실장(왼쪽)이 지드래곤과 콘서트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YG가 빅뱅 콘서트에 투자한 예산만 230억원. 무대조명·중계·영상제작·세션 등 전 분야에서 세계 최고 인력을 영입했고, 타임 코드 시스템·히포 시스템 등 공연계 최신 기술을 도입해 화려한 연출을 선보였다. 정 실장은 “팝스타들의 내한 공연 때 해외 엔지니어들은 한국 스태프와 일하면서도 절대로 노하우를 가르쳐주지 않는다”며 “YG공연팀은 이들과 합작하면서 기술을 꿰찰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가 걸어온 길은 한국 엔터테인먼트계의 공연 역사와도 통했다. 선진국 공연기획사에 해외 공연을 일임하는 형태에서 정 실장은 차츰 자신의 스태프와 함께 “고추장 맛을 보여주겠다”며 현지 공연을 주도해나갔다.

“YG에서 최초로 해외 공연을 한 가수는 세븐이었어요. 세븐은 2005년 일본·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회사 분위기도 그랬고 저 역시 우리보다 기술이 뛰어난 일본 스태프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의 공연 기술과 환경을 보면서 문화충격을 받았던 때였으니까요. 빅뱅도 2010년 전까지는 한국 공연은 제가 하고 일본에서는 현지인에게 맡겼습니다.”

해외 팬을 거느린 K-팝 스타는 있지만 국내 공연업계의 수준은 이들의 세계적 인지도를 뒷받침해주지 못한 시기였다. 하지만 해외 기획사가 YG그룹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 그는 2010년 일본·미국 등에서의 콘서트를 YG공연팀이 주도하기로 결정했다.

빅뱅 월드 투어의 숨은 주역 정치영 YG엔터테인먼트 공연기획실장은 “대한민국 1등은 작은 꿈이었다”며 “빅뱅·투애니원 콘서트에 이어 올해는 지드래곤 공연으로 새로운 기획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빅뱅·투애니원은 한국 가수잖아요. 해외 팬들 역시 이들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는 거고요. 일본·미국화된 빅뱅이 아니라 빅뱅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판단은 적중했고 빅뱅 콘서트는 아레나에서 돔 투어로 격상했습니다.”

그는 아이돌 가수의 공연을 볼거리 가득한 화려한 영상쇼로 만들기 위해 국내 최초로 ‘타임 코드 시스템’과 ‘히포 시스템’을 도입했다. 타임 코드 시스템은 0.1초 단위로 시간을 설정하면 그 단위대로 음악·영상·조명이 자동으로 따라가게 하는 기술로, 박자에 맞춰 정확하게 빛과 이미지를 움직여준다. 히포 시스템은 2D(평면)영상을 최적의 입체영상으로 구현하는 기술로 해외에서도 비욘세 콘서트나 각종 큰 시상식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빅뱅이 국내에서 처음 사용한 히포타이저(Hippotizer)는 현존하는 미디어서버 중 가격도 제일 비싸고 성능도 최고로 꼽힌다.

“장비만 갖췄다고 공연 품질이 올라가는 건 아니에요. 한국 공연업계의 문제점은 영상장비에는 투자하면서 콘텐츠에는 그만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많은 콘서트에서 의미 없는 선과 도형, 그림이 등장하는 걸 보셨을 거예요. 판매용으로 제작된 디자인 자료를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지요. YG는 빅뱅·투애니원 콘서트에서 이미지를 전부 새롭게 제작했습니다.”

그는 콘셉트에 맞게 창작한 이미지·조명 콘텐츠를 선진 시스템으로 무대에 올렸다. 자료를 타임 코드 시스템이 깔린 기기에 입력해놓으면 공연 당일 기기가 알아서 화려한 영상쇼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장면에 맞춰 세트를 기기에 올리면 기계장치가 자동으로 매끄럽게 무대를 바꿔주는 뮤지컬 ‘위키드’ 팀처럼 선진 공연 시스템으로 일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일하기까지 정 실장이 투자한 시간은 20년에 이른다. 현재는 YG의 공연통으로 불릴 정도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20년 전 그는 작은 이벤트 회사에서 청소부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은 1993년 6월 평택 지역의 청년들을 위한 한마음축제에서 심부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달라졌다. 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인 스무살 때였다.

“축제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열정과 공허함은 제게 너무나 매력적이었어요. 일주일간 만든 무대를 고작 2시간 쓰고 부수라는 말에 가슴이 턱 막힐 정도로 아쉬움을 느꼈어요. 계속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학교도 그만두고 일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이후로 그는 이벤트 회사에서 1999년 광고대행사로 직장을 옮기고 각종 행사를 기획·연출했다. 나이키 농구대회, 해변축제 등 사람들이 모여 즐거움을 나누는 행사는 종류별로 한번씩 겪어봤다. “공부 안 하고 지저분해져 들어온다”고 눈물 훔치는 어머니를 설득하며 광고대행사로 옮기기 직전 2년간 하드웨어 시스템 업체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머리 쓰는 일뿐만 아니라 현장 작업을 몸으로 배우기 위해서였다.

경력이 쌓이자 아이디어 넘치고 일처리 깔끔하게 하는 그에게 주변의 이직 제안이 쏟아졌다. 그는 2001년 큰 광고대행사에서 보낸 러브콜에 이력서를 썼다. 그러나 실력보다 학벌을 중시하는 닫힌 사회에서 인생의 첫번째 시련을 겪었다. 그에게 이직 제안을 했던 대행사 선배는 미안하다며 한마디 했다. “근데 너 대학 졸업 안 했냐.”

“저는 목표를 위해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 무렵 대학 중퇴가 발목을 잡았어요. ‘난 여기가 끝인가’ 하는 좌절감이 밀려왔습니다.”

이러한 상처는 정규직·안정적인 보수를 버리고 더욱 자유롭게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사로 옮기는 계기가 됐다. 그를 탐냈던 곳은 광고대행사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시 1인 기획사였던 엠보트(M-boat) 박경진 대표는 “나와 함께 가수를 키워보자”며 거듭 제안했다. “형 나는 안정적으로 벌고 있는데…” 결혼하고 아이도 있었던 그는 정규직을 포기하지 못했다.

“정말 대모험이었어요. 제 자신을 던져버렸을 때 이직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엠보트에서 처음 키운 가수가 휘성이었고 얼마 후 양현석 대표가 투자를 결정하면서 엠보트로의 이직은 YG와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는 엠보트에서 휘성·거미·빅마마 등 소속 가수의 공연을 기획·연출했고 시간이 흘러 YG에 둥지를 틀며 해외 팬들이 사랑하는 K-팝 가수의 공연을 총 지휘하게 됐다.

그는 이벤트 회사의 막내 시절부터 ‘아이디어 뱅크’로 불렸지만 현재 자리에 이르게 된 원동력으로 아이디어보다는 ‘최고 정신’을 꼽았다.

“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관객이 돈 아까워하면 다음은 없다’고 생각하며 일했습니다. 다행히도 양현석 사장님은 이런 생각에 200% 공감하는 분이었고요. 3월부터 진행할 지드래곤 월드 투어에서는 빅뱅·투애니원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지난해와 다른 새로운 기획들을 선보일 거예요. YG 공연 브랜드를 만들며 세계로 나아갈 겁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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