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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보다 값진 은? 역사 속에선 그랬다

입력 : 2013-03-08 18:20:35 수정 : 2013-03-08 18: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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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함대로 대항해시대 연 스페인
식민지 은 약탈해 유럽 패권 차지
中, 은 변동성 탓 서양 열강에 져
금융위기 후엔 안전투자처로 주목
대개 은은 금보다 값어치가 덜한 것으로 인식된다. 화폐 단위나 교환가치에서나 금보다 항상 뒤져 있는 게 은이었다. 그러나 실제 인류 역사를 보면 금보다 은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 투자자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불안정성으로 주식보다는 실물 쪽으로 눈을 돌린다. 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경제 불안이 지속되면서 가장 안전한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

화폐경제 전문가 융이가 쓴 ‘백은비사’는 은이 인류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 풀이하고 미래 안전자산의 가치를 짚어본다. 은은 금보다 변동성이 크고 금보다 싸 큰 수익을 노릴 수 있다. 은은 수요와 공급에서 매우 불규칙적이다.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시장을 왜곡하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투자의 신’ 워런 버핏도 일찍이 은의 이런 속성을 간파했다. 버핏은 1999년 은을 대량 사들여 주식투자에 뒤지지 않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최근 로저스홀딩스의 짐 로저스는 “결국 화폐전쟁의 승자는 실물이며, 금과 은 중에서 택하라면 은을 사겠다”라고 했다.

융이 지음/류방승 옮김/알에이치코리아/1만4000원
무적함대로 대항해 시대를 연 스페인은 식민지에서 약탈해 온 은으로 유럽을 제패했다. 하지만 은 때문에 스페인은 사치성 소비사회로 전락했고, 다시는 일어서질 못했다. 중국 왕조들이 은 때문에 부침을 거듭한 사실은 역사가 입증한다. 은이 한 나라의 경제와 정치 구도를 어떻게 좌우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중국이다. 저자는 바로 이런 점에서 은이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은 “왜곡되고 높은 레버리지가 작용하면서도 값싼 은은 세계 금융시장 시스템을 치명적으로 강타할 힘을 가지고 있다”라고 했다.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들은 금을 ‘태양의 땀방울’, 은을 ‘달의 눈물’이라고 부르며 신성시했다. 이들에게 은은 재물이 아닌 아름다움과 신성함의 상징이었다.

동화책 ‘오즈의 마법사’에도 은의 가치가 담겨 있다. ‘오즈(oz)’라는 신비의 나라는 바로 금·은의 중량 단위인 온스의 약칭이다. 동쪽마녀는 당시 미국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를 상징했다. 그가 1893년 은본위제를 폐지하고 금본위제를 밀어붙이자 경제가 곤두박질친다. 도끼를 든 양철나무꾼은 노동자 계층을 대표한다. 나무꾼은 심장과 감정이 있었지만 동쪽마녀의 저주로 심장을 잃고 말았다.

은 지지자였던 프랭크 바움은 은본위제가 폐지된 이후 1900년 ‘오즈의 마법사’를 출간했다. 이 작품에는 미국이 다시 은본위제로 돌아가 노동자를 살리자는 바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세 번만 두드리면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마녀의 은구두는 그만큼 은이 가진 위력이 대단함을 뜻한다.

저자는 최근세 약 100년에 걸쳐 중국이 서양 열강에 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은의 변동성 때문이었다고 했다. 중국 왕조의 부침의 이면에는 은이 있었다. 지금도 중국인들은 금보다 값싼 유형 자산인 은을 선호한다. 2012년 중국의 은 가격은 14%나 올랐으며 올해엔 그 수요가 최고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책에는 은에 얽힌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이 실려 있다. 과학자이면서 금융 전문가이기도 한 뉴턴이 금 값을 3파운드 17실링 10.5펜스로 확정하여 금본위제를 확립한 사건,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은위원회와 손잡고 뉴딜 정책을 시행하게 된 과정, 장제스 정부가 은을 팔아 전쟁 무기를 사들인 일 등 숨겨진 비밀들이 펼쳐진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은은 더 이상 왕조시대의 잔재가 아니다. 화폐 가치로서보다는 미래 산업의 원자재로, 매력적인 투자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달러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금은 복본위제를 부활시키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저자는 과거 금속 화폐의 역사를 통해 앞으로 은이 보여줄 가능성을 전망한다. 역사 속에서 은이 보여준 불안정성은 결국 인간이 지닌 불안심리에서 비롯됐고, 이것이 끊임없는 변동성을 초래한다. 저자는 “역사의 교훈을 기억한다면 은은 다시 한번 새로운 금융수단으로 은빛을 발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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