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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야 사는 여자…마트판매원의 하루

입력 : 2013-04-18 21:18:49 수정 : 2013-04-18 21: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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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불멸의 여자’
2013 서울연극제의 개막작 ‘불멸의 여자’(사진·최원석 작, 박찬진 연출)는 ‘감정노동자’로 일컬어지는 마트 판매사원의 하루를 담아낸다.

마트의 화장품 매장에 출근한 희경과 승아는 업무 준비로 분주하다. 이때 전화가 걸려온다. 나흘 전 눈가주름방지용 화장품을 사갔는데 오히려 주름이 더 늘었다면서 매장을 찾아와 반품하겠다는 내용이다. 때론 고객이 불합리한 요구를 해도 항상 웃으며 응대해야 하는 판매사원. 이들을 찾아온 환불요구 손님 정란과 교환요구 손님 지은은 희경과 승아의 하루를 쉴 틈 없이 조여맨다. 본사와 마트, 아웃소싱과 지점장이라는 단어들이 고객의 혀에서 가시처럼 돋아 두 여사원을 생채기 내는 과정은 실제 있을 법한 판매직 종사자들의 고문과도 같은 일상을 밀도 있게 다룬다.

사람이 아닌 고객, 사람이 아닌 판매사원을 부르며 무대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지칭하는 여자들의 악다구니는 연극을 본다기보다 실제 누군가의 실랑이를 훔쳐보는 듯한 불편함과 함께 쾌감을 고조시킨다.

우리 주변에는 단지 서비스나 판매를 위한 ‘겉으로만 웃는’ ‘훈련받은’ ‘업무용’ 미소가 넘쳐난다. 그것은 복제된 미소일 뿐이다. 웃음을 강요당하는 사람들, 감정노동자들은 슬퍼도 괴로워도 아파도 무시를 당해도 언제나 웃는 얼굴을 유지해야 한다. 어금니를 악물고 웃는 모습이 그 어떤 비극배우의 표정보다도 괴롭게 느껴진다. 누가 이들에게 웃음을 강요했을까.

느끼는 감정과 표출되는 감정의 진폭이 커질수록 분노의 강도는 세지고, 통제받지 못한 분노는 폭력으로 발전한다. 이는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되는 폭력과 약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비뚤어진 분노의 전형이 되곤 한다. 결국 또 다른 분노를 야기하고 마침내 우린 이 사회에서 부조리한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웃질 못해서 해고당한 마트의 계산원 아줌마가 가장 예쁘게 활짝 웃는 화장품 판매원에게 웃는 모습이 꼴 보기 싫다고 시비를 거는 것이 극의 주된 내용이다. 잘 웃질 못해서 해고당한 피해자가 돌연 가해자로 돌변하는 것이다. 해가 뜨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찌 됐든 늘 웃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분명 ‘잔혹 희극’이다.

연극 ‘빨간시’의 강애심이 지치지 않고 희경과 승아를 괴롭히는 손님 정란역을 열연한다. 강명주 이승영 이은정 서지유 출연. 21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평일 오후 8시, 토 오후 3·7시, 일 오후 3시. 110분. (010)9205-8648

김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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