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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농약중독치료 세계적 권위자 홍세용 교수

입력 : 2013-05-10 20:43:38 수정 : 2013-05-10 20: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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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제 개발 위해 농약 마신 ‘의학계 이단아’
“예전 우리 의학계는 ‘꺾꽂이 의학’이었어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활짝 핀 꽃을 가져다가 꺾꽂이를 하는 형태의 의술이어서 제대로 된 농약중독 치료법이 없었습니다.”

8일 오전 가득 쌓인 책과 세필로 쓴 각종 메모지가 놓여 있는 책상이 전부인 단출한 연구실에서 만난 순천향대 천안병원 홍세용(65·신장내과·사진) 교수는 황무지 같았던 초기 농약중독 치료의 어려움을 꺾꽂이론에 빗대 털어 놓았다.

미국 등 서양의학에서는 기계화 영농으로 농약중독 사례가 거의 없는 데다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하는 사례도 드물어 농약중독 치료법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홍 교수가 농약중독치료 전문가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농촌과 가까운 중소도시의 대학병원에 근무한 덕분이다. 1974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고대병원에서 전문의 자격을 딴 그는 군의관으로 병역을 마친 뒤 1984년 충남 천안 순천향대 의대 교수로 임용됐다. 당시 순천향대 천안병원에는 인근 농촌지역에서 농약을 마시거나 농사일을 하다가 농약중독 증세로 다급하게 실려오는 중환자가 적지 않았다.

홍 교수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느 병원이나 농약을 마신 환자는 의사들 사이에서 진료를 꺼린다”며 “농약중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의사가 없어 이 의사 저 의사가 돌아가며 환자를 치료하다 보니 치사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농촌 출신인 홍 교수는 대부분 사회적 약자인 음독자들이 고통 속에서 목숨을 잃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이 아파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치료법이 없어 농약중독 환자들이 숨지는 모습을 보면서 치료법을 개발해야 겠다고 다짐했다”며 “농약중독 치료에 숙명처럼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농약중독 환자 치유를 위한 외길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수 개발한 해독제의 효능을 확인하려고 미량이지만 직접 농약도 마셔 보고, 돈벌이와는 거리가 먼 연구에만 매달려 의학계에서는 ‘이단아’로 불리기도 했다.

홍 교수는 일상의 신장내과 의사에서 벗어나 198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농약 연구를 시작했고, 마침내 1991년 정복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파라콰트(그라목손) 농약중독 치료법을 개발하는 성과를 거뒀다. 제초제인 파라콰트는 원액 한두 방울만 마셔도 사망에 이를 정도의 맹독성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자살 또는 취급 부주의로 파라콰트 중독 환자가 수백명씩 발생했지만 대부분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홍 교수의 해독 치료법 개발로 생존율은 최고 85%까지 높아졌다. 1994년부터 홍 교수의 농약중독 치료에 관한 연구 결과 및 치료 경험은 권위 있는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됐고, 그는 명실상부한 농약중독 치료의 국제적인 권위자가 됐다.

순천향대 천안병원 응급실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국 각지에서 음독환자를 실은 앰뷸런스가 들어온다. 음독사고를 경험한 당사자나 가족들은 얼마나 빨리 홍 교수에게 치료 받느냐를 ‘생존’ 조건의 하나로 꼽을 정도다.

홍 교수가 농약중독 치료의 획기적인 결과를 얻기 시작한 1991년 순천향대는 천안병원에 국내 최초로 ‘농약중독연구소’를 설치했다. 연구소에는 매년 전국에서 평균 400명 이상의 농약중독 환자들이 찾아와 홍 교수의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1998년 3월과 2010년 5월, 국내에서 시판되는 300여종의 농약 성분 분석과 치료법 등을 담은 ‘농약중독치료 지침서’와 ‘제초제중독치료 지침서’를 발간해 농약중독 연구를 집대성했다.

홍 교수는 현재까지 1만여명의 농약중독 환자들을 진료해 5000여명의 목숨을 살려냈다. 기회가 되면 자신이 살려낸 환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만나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그의 연구 열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동안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던 카드뮴 중독을 완화하는 방법, 농약에 첨가되는 계면활성제 독성 치료법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불산가스 누출 등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화학물질 중독치료법 개발도 연구목록에 추가했다.

음독사고가 끊이지 않는 세태에 대해 홍 교수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음독으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 때문”이라며 “소박하면서도 행복한 삶이 얼마든지 많은데 ‘전원일기’ 같은 소박한 TV 프로그램은 없어지고 돈의 유희가 판치는 프로그램만 쏟아져 나오는 현실이 개선됐으면 한다”고 했다.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와 문화를 꼬집은 것이다.

백발의 노의사는 “20년 넘게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던 농약중독 분야 연구에서 외로운 사투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캠퍼스 커플인 아내(김난숙 고려대 의대 마취과 교수) 덕분이었다”며 쑥쓰러운 듯 웃음을 지었다.

천안=김정모 기자 race121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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