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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원전비리, 검은 사슬을 끊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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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6-06 18:34:02 수정 : 2013-06-06 18: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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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 검증·승인 한지붕 밑서 일어나
일과성 처방아닌 부정 발본색원을
올해 들어 처음으로 전력수급경보 ‘관심’단계가 발령됐다. 국민안전과 맞바꾼 원전비리 때문에 서민들만 폭염 속에서 고통받게 된 건 아닐까 착잡한 6월이다.

가히 한국원전은 비리의 온상인가. 전력대란 경고와 함께 하루하루 살얼음 위를 걷는 느낌이다. 신고리, 신월성 제어동선 외에 추가위조 건은 없을까. 한켠에서는 원전비리의 끝이 어디일지 모른다는 볼멘소리도 나오는 판이다. 과연 운영자도 규제자도 물감처럼 번진 비리를 모르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이들은 모두 무능한 거고, 알았다면 이들은 제 식구 감싸고 돌기다.

검증서가 위조된 불량부품은 한국원전을 다시 한 번 벼랑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자정 결의와 인적 쇄신으로 비리 사슬을 끊겠다고 공언해 온 운영자의 구태의연에 국민 불신만 더해가는 건 아닐까. 더욱이 수출원전인 신형경수로에서도 비리가 나왔다면 우리 원전 수출전선에 빨간등이 여럿 켜진 거나 마찬가지다.

원전은 무엇보다 안전이 생명인데도 불구하고 왜 있을 수도 없는, 있어서도 안 될 비리가 되풀이되는 걸까. 현 정부가 원전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가동 중단을 일으킨 부품위조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기로 했다는데, 이를 계기로 뿌리 깊은 비리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

지난달 원전 3기를 발목 잡은 비리의 검은 사슬이 드러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전부품의 검증과 승인이 한 지붕 밑에서 이루어지는 형국이다. 원전 운영, 설계, 부품감리 업체 출신이 하청업체나 공공기관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부품 검증업체 자격인증, 부품성능 시험검증, 시험승인, 최종납품으로 이어지는 고리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험성적 위조라는 합작품을 만든 것이다. 어느 누구도 끈끈한 먹이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원전을 짓는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기술회사가 원전을 설계하고 부품을 발주한다. 제조업체는 부품을 만들어 검증업체에 성능시험을 의뢰한다. 검증업체는 해당부품이 사고 시 극한상황에서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한다. 제조업체는 검증업체의 시험 결과를 기술회사에 제출한다. 기술회사가 이를 승인해야 제조업체는 운영사에 납품할 수 있다.

독자적인 검증능력은 민간업체보다 월등한 장비와 인력을 갖춘 기계연구원, 산업기술시험원 등 공공기관이 훨씬 뛰어나다. 그런데도 원전부품 검증은 주로 민간업체가 맡아 왔다. 제조사가 누군가의 눈치를 봤거나 압력을 받았던 건 아닐까. 공기업인 한수원이 23기 원전 운영을 독점하는 데 비해 미국은 104기의 원전을 26개 민영회사가 운영한다. 무한경쟁을 하다 보니 상호견제 능력을 갖추고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원전을 운영하고 있다.

비리의 여파는 이번 여름 국민이 겪게 될 전력대란에서 더욱 커진다. 가뜩이나 부족한 전력사정으로 올여름을 어떻게 넘길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데, 각 100만㎾에 달하는 원전 3기가 장기간 멈추는 결과를 빚었으니 누가 책임질 건가. 현재 멈춰선 원전은 모두 10기로 전체 원전 설비용량의 35%에 이르러 전력수급조절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번에야말로 일과성 처방에 그칠 것이 아니라 40년 가까이 이어온 원전의 비리 사슬과 난맥상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술적인 전문성을 무시하고 혹여라도 마녀사냥이나 표적수사가 되어선 안 된다. 전방위적 비리 색출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괜히 전문기술까지 들춰서 해답도 없는 주장에 휘둘리고 실적에 치우친 수사는 애꿎은 희생양을 불러올 테니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결국 기술자들의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가 수반되어야겠다. 꼬리만 자르면 언젠가 다시 자란다. 이번 기회에 머리와 몸통도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서균렬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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