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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정의 공연 돋보기] 공연 한 편 만들어지기까지 그 ‘기적’같은 과정에 박수를

입력 : 2013-06-17 09:29:26 수정 : 2013-06-17 09: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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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공연 한 편이 오르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각 분야의 사람들 모두가 눈물과 땀을 쏟으며, 극적인 일들을 수없이 겪고 난 후에야 작품 하나가 완성되니 말이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는 공연이 ‘엎어지는’ 경우도 적잖게 있다. 올해 초연된 화제의 창작뮤지컬도 극장과의 문제 때문에 막도 올리지 못할 뻔했다. 이처럼 파란만장한 무대 뒷이야기를 다룬 ‘백스테이지 뮤지컬’에서는 ‘뮤지컬인’들의 애환과 속살이 느껴지곤 한다.

‘42번가’는 겉으로는 주인공 여배우의 소원 성취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코미디지만, 잘 보면 저변에 흐르는 더 강력한 서사를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인물들이 공유하는 ‘초 목표’는 뮤지컬 ‘프리티 레이디’를 무사히 올리는 것이다. 때문에 페기 소여가 쇼 비즈니스가 자신의 생리에 맞지 않다며 공연을 포기하려 했을 때, 모두가 그녀를 달래기 위해 기차역으로 모여드는 장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공연에서 온갖 암투와 갈등을 해결하게 하는 비전은 바로 뮤지컬 그 자체인 것이다.

이는 작품의 배경이며 원작 영화가 만들어졌던 1930년대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당시는 경제대공황과 영화의 발달 등으로 공연계, 특히 초기 뮤지컬인 보드빌이 타격을 입었던 때다. 무대에서 초연된 1980년 당시도 만만치 않았다. 황금기 시대 이후 뮤지컬이 대중문화와 유리된 채 돌파구를 찾지 못했었다. 이러한 어두운 배경을 이면에 감춘 채 보여주는 화려한 탭댄스와 해피엔딩은 뮤지컬의 희망적인 환상을 향한 절실함을 느끼게 한다.

‘코러스 라인’에서는 주연이나 조연이 아닌 코러스들이 주인공인 만큼, 무대에서 듣기 힘들었던 그들의 속 깊은 이야기가 감동을 전한다. 자신의 개인사를 풀어 놓으라는 연출가의 요구에, 홀로 조명을 받아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지원자들은 다소 머뭇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곧 성 정체성, 콤플렉스 등의 상처들을 무대에 쏟아 놓는다. 

뮤지컬 ‘42번가’에서 인물들의 ‘초 목표’는 공연을 무사히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무대에 선다는 것은 실오라기 하나 없이 발가벗겨지는 것과 같다. 감추려 해도 세포 속에 퇴적되어 온 삶의 흔적이 관객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하물며 매의 눈으로 관찰 중인 연출가 앞에서야 오죽하겠는가.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는 감동은 가식을 벗어던진 지원자들의 절실함에서 비롯되듯, ‘코러스 라인’이 토니상의 아홉 개 부문을 휩쓸고 16년가량 장기간 흥행할 수 있었던 것도 자기 반영적인 진실함의 반로이다.

그런가 하면, ‘날아라 박씨’는 창작뮤지컬의 현실을 반영한 백스테이지 뮤지컬이다. 연출가·음악감독·배우 등의 독특한 기질이 재치 있게 묘사되고, 휘몰아치듯 작품을 만들어가는 제작 시스템을 떠올리며 웃음 짓게 만든다. 가수의 꿈을 접어놓았던 컴퍼니 매니저가 목이 쉰 여주인공 대신 무대에 서는 해프닝을 그렸다. 녹록지 않은 국내 뮤지컬 제작 현실 속에서 힘들게 작업해온 작가와 작곡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만큼 ‘농담 속의 뼈’가 느껴진다.

뮤지컬이 꿈과 환상을 반영한다면, 그것을 쫓는 창작자며 배우들 등의 모습도 이미 좋은 뮤지컬의 소재다. 백스테이지 뮤지컬은 화려한 ‘송앤댄스’의 시간을 극중극을 통해 자연스럽게 묘사하기에도 유리하다. 또한 무대 위 환상을 가능케 한 무대 뒤의 모습으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게 만든다.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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