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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 여자로 살아온 할머니의 일생

입력 : 2013-07-03 00:34:34 수정 : 2013-07-03 00: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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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숙자 이야기’ 3일 무대에 “우리 언니 평소에 꽃 좋아했으니까 가는 길도 꽃으로 예쁘게 장식해줄까.”

평생 미군기지 옆에서 술 팔고 몸 팔며 살다 간 어느 여인의 관이 장미꽃으로 가득 덮인다. 비통한 분위기도 잠시, 고인의 친구와 동생들은 관을 둘러싸고 화투판을 벌인다. 누군가의 선창으로 애절한 노래 한 가락이 이어진다.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 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가수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을 열창하는 그녀들 눈에 이슬이 맺힌다.

연극 ‘숙자 이야기’의 한 장면. 기지촌 여성(가운데)이 미군과 사이에 낳은 애가 학교에서 ‘껌둥이’란 놀림을 받았다며 동네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행복공장 제공
3일 오후 7시30분 서울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숙자 이야기’는 제15회 서울변방연극제 개막작이다. 미군이 주둔한 경기 평택에서 기지촌 여성으로 수십년째 살고 있는 할머니들의 얘기다. 연극제가 표방한 ‘변방’의 정체성에 걸맞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소외된 존재를 내세워 관객의 감성을 자극한다.

‘숙자 이야기’는 짜여진 대본도, 정해진 대사도 없다. 출연진도 전문 배우가 아니라 기지촌에서 삶을 일궈 온 평범한 60∼70대 할머니들이다. 연기를 제대로 배운 적 없는 그들은 무대에서 10대 소녀에서 양공주, 웨이트리스, 포주는 물론 미군 병사까지 모든 역할을 척척 해낸다. 결말을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관객이 보기에 결말이 불만스러우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관객참여형’ 공연을 표방한다.

제목의 ‘숙자’는 특정한 인물이 아니고 기지촌에 청춘을 묻은 할머니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기지촌 할머니도 대부분 70대 이상 고령이라 재공연을 기약할 수 없는 상태다. 연출을 맡은 노지향(52) 행복공장 상임대표는 “우리의 이 작은 연극으로 많은 ‘숙자’ 이모들에게 찾아올 사람이 생기고 찾아갈 곳이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료 공연이지만 예약이 필요하다. (02)2029-1700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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