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요리·미술 이어 태권도도 영어로
영어유치원 ‘생후 18개월반’도 등장
미국 유치원 교재·교과서로 수업해
공립학교 가면 수준차 … 다시 학원행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의 태권도 학원. 도복을 입은 6∼7세의 어린이들이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관장에게 “굿 애프터눈, 써” 하고 허리 굽혀 인사하자 수업이 시작됐다.
“프론트 킥(앞차기)을 해볼까? 자, 이번엔 선생님을 봐. 스트레치 유어 레프트 암(stretch your left arm·왼팔을 뻗어).”
손모 관장은 “3년 전에는 모든 대화를 영어로 하는 ‘영어 몰입식 태권도’를 했지만 어린아이들이 수업을 이해하지 못해 지금은 간단한 대화만 영어로 한다”면서 “하지만 학부모들은 전처럼 영어를 더 늘려달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태권도는 종주국 언어인 한국어로 가르치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영어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영어교육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에는 전 세계 가능한 영어교육 모델은 다 있다’고 말한다.
◆태교로 시작하는 영어
‘태글리시’(태권도+잉글리시)뿐 아니라 영어발레, 영어미술, 영어요리도 가능하면 더 어릴 때, 최대한 많은 시간 자녀를 영어에 노출시키고 싶어하는 부모들의 욕구를 발판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딸에게 영어 발레를 가르치다가 일반발레로 바꾼 주부 이한미(37)씨는 “원래 발레 용어가 영어라서 일반이나 영어 발레나 별로 차이가 없었다”면서 “선생님도 영어가 아닌 발레 전공이라 영어에 큰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명 체인 영어발레는 기저귀도 채 안 뗀 20∼24개월 유아부터 시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영어를 정규수업으로 배우도록 하고 있지만, ‘영어 교육은 어릴 때 시작할수록 좋다’며 기저귀도 못 뗀 영유아들이 영어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아용 영어전집이나 영어학습지 상당수가 ‘태교부터’, ‘0세부터’ 시작하는 ‘베이비 과정’을 앞다퉈 내놓고, 보통 5세부터 다니던 영어유치원도 ‘생후 18개월 반’이 등장했다.
공교육도 이런 흐름에 가세하고 있다. 지난해 육아정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집 이용 아동이 참여하는 특별활동 과목 중에도 영어가 68.9%로 가장 많다. 연령대별로 보면 5세에는 영어수업 참여율이 83.3%까지 올라간다. 유치원도 마찬가지다. 방과후 특기적성활동 과목 중 영어 비중이 62.4%로 다른 과목의 2∼3배가 넘는다. 그러나 유치원에서 배우는 영어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웬만하면 막을 수 없는’ 영어수업
교육부는 방과후수업에만 영어 교육을 허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유치원이 영어를 정규과목으로 매일 가르치고 있다. 취재진이 교육특구 내 30곳의 일반 유치원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유치원에서 정규시간에 영어수업을 하고 있었다.
경남 창원시 소재 유치원의 이모(31·여) 교사도 “창원뿐 아니라 부산 등 내가 아는 한 모든 유치원에서 정규시간에 영어수업을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서 유치원 원장을 했던 안순아씨는 “엄마들이 방과후수업은 신뢰하지 않는 데다 1주일에 한두 번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영어를 정규수업으로 편성하고 20만원 안팎의 수업료를 따로 걷는 곳이 많다”고 귀띔했다.
어려서부터 영어에 많이 노출시켜 바이링구얼(이중언어자)을 만들겠다며 영유아에게 비싼 영어 교구를 사주거나 방문학습을 시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한 사립초등학교 교사는 “1학년 때부터 정규수업에서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를 쓰는 곳이 대부분이고 한국의 3학년용 영어 검정교과서를 쓰는 곳은 드물다”고 귀띔했다. 일반 유치원을 나온 아들을 영어몰입식 사립초등학교에 보낸 최연아(38)씨는 “영어수업이 많아 별도의 사교육을 안 해도 될 줄 알고 보냈는데, 반 친구의 절반이 영어유치원을 나온 데다 어려운 미국 교과서로 수업을 해 아이가 너무 힘들어했다”면서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원어민 영어과외를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립학교를 다니거나 준비 중인 아이들은 사립학교에 가려고 영어유치원을 가고, 영어유치원에 가기 위해 영어 방문학습을 하는 것이 필수 코스”라며 “그러다가 공립학교에 가면 수준이 맞지 않아 다시 학원을 가게 된다”고 전했다.
김수미·윤지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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