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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할시 50년 부산'의 부침을 이끈 市長들

입력 : 2013-09-28 10:06:39 수정 : 2013-09-28 10: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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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직할시 승격 이후 현재까지 부산시정을 이끈 시장은 제12,13대 김현옥 시장(1962년 4월∼1966년 3월)부터 제33대 허남식 시장(2004년 6월∼)에 이르기까지 모두 19명.

부산의 과거 50년 부침은 이들의 인생 부침과 함께했다.

'불도저 시장'을 알려진 초대 직할시장인 김현옥 시장은 직할시 승격의 일등공신이다. 5·16 당시 부산항만사령관으로 군복을 입은 채 취임했다가 1962년 준장으로 예편한 뒤 부산시장에 임명됐다고 한다.

1962년 11월 11일, 최고회의에서 부산직할시 승격법률안이 부결되자 야간열차로 상경해 11월 12일 이를 재상정시킨 일화가 있다.

그는 도심 개발에 주력해 전국 처음으로 시역 전반에 걸친 도시계획 용도지역과 지구제를 관철해 부산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직할시 2대 시장인 제14대 김대만 시장(1966년 3월∼1969년 4월) 역시 도시정비사업에 역점을 뒀는데 영주동과 범일지구 재개발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 영주동 판자촌이 재개발돼 영주아파트가 건립됐고 교통량 증가에 따라 전차와 전차 궤도를 철거하고, 영도다리를 폐쇄된 것이 김대만 시장 때의 일이라고 한다.

제16대 최두열 시장(1970년 4월∼1971년 6월)은 38세의 젊은 나이로 부산시장에 임명돼 화제를 모았던 인물. 고지대 주민을 위해 산복도로를 개통했고 대티터널, 만덕터널을 만드는 등 도로사업에 주력했다.

제17대는 박영수 시장(1971년 6월∼1977년 7월). 6년 1개월의 긴 재임기간을 통해 '부산의 도시기반을 확실하게 구축했다'고 평가를 받는 시장이다.

제1도시고속도로와 부산대교를 착공했고 부두도로를 확장해 빠르게 커가는 부산의 미래를 대비했다.

그는 문화방면에도 주력해 시민회관을 만들고 민속예술관과 시립박물관을 건립했으며 금정산성을 복원하고 충렬사를 성역화했다.

제18대 최석원 시장(1977년 7월∼1980년 1월)은 지하철 5개 노선 102㎞ 기본계획을 수립, 부산지하철 시대의 첫걸음을 내딛게 했다.

'위대한 시민, 위대한 부산'이라는 시정구호를 내건 제19대 손재식 시장(1980년 1월∼1981년 4월)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부산포 해전 승전일을 기념한 매년 10월 5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제정했다.

제21대 최종호 시장(1982년 5월∼1985년 2월)은 '뜻 모아 푸른 부산, 뜻 모아 문화시민'이라는 시정구호를 정하고 동참, 화합, 안정을 강조한 시장이었다. 중앙로 교차로에 전자감응식 교통신호시설을 처음으로 설치했으며 버스 승차권 자동판매 설치, 시·구간 행정전산화를 추진했다.

제22대 정채진 시장(1985년 2월∼1986년 8월)은 '밝고 활기찬 부산'으로 정하고 침체에 빠진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에 역점을 뒀다.

날로 심각해지는 교통난을 해소를 위해 가야로 우회도로와 제2부산터널공사를 착공했고, 동서고가도로의 실시설계를 완료했다.

제26대 안상영 시장(1988년 5월∼1990년 12월)은 부산을 동남경제권의 경제수도로 육성하는 데 주력했다.

용지난, 교통난, 재정난으로 집약되는 3대 현안 타개에 노력했고 용지난 해소를 위해 김해군 녹산, 가락면과 의창군 천가면 등 90㎢의 시역을 확장하고 강서구를 승격했다. 대대적인 교통체계개선사업을 추진했고 황령산 터널을 착공했다.

1990년대 들어 첫 취임한 제26대 김영환 시장(1990년 12월∼1992년 12월)은 부산이 21세기 주역 도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 정착'과 '지역경제 중흥'을 역점시책으로 내걸었다.

명지, 녹산, 신호지구와 가덕도를 연결하는 이른바 서낙동강권 종합개발계획을 실질적으로 추진하였고 해운대 신시가지 구성 사업도 이때 기공됐다.

문민정부 시작과 함께 취임한 제28대 정문화 시장(1993년 3월∼1994년 9월)은 공직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강조했다. 시장 공관을 개방하고 군사작전지역이었던 몰운대, 태종대, 신선대 등 해안경관지역을 개방해 시민과 조직사회에 자율과 변화를 체감하게 하는 상징이 되었다.

지방자치가 본격화됨에 따라 1995년 1월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해 7월 1일 34년 만에 부활한 민선 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한 제30대 문정수 시장(1995년 7월∼1998년 6월)이 시정을 이끌었다. 문 시장은 '가덕도 신항만개발계획' 등을 확정하는 등 '21세기 세계 첨단 해양도시 건설의 청사진'을 계획했다.

특히 1996년 9월 제1회 부산 국제영화제를 개최해 문화의 불모지로 불리던 부산을 국제적 영상도시로 탈바꿈시켰다.

관선에 이어 민선시장으로 다시 한번 시정을 이끈 제31,32대 안상영 시장에 이어 2004년 4월부터 제33대 허남식 시장이 3선 시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그는 동부산과 서부산 지역개발을 위해 그린벨트 5만여 평을 해제해 본격적인 개발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UN교통장관회의 등 각종 국제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부산디자인센터와 부산테크노파크 등 산업기반시설 확충에도 주력하는 한편 부산불꽃축제 국제화와 남해안 크루즈운항 등 부산 브랜드 관광상품 개발을 추진했다.

서부산권 그린벨트 1천만평을 해제해 국제물류산업도시와 에코델타시티 건설을 추진하고 부산∼후쿠오카 초국경 경제권 형성, 지하철 다대선 착공, 부산도시철도망 확충 등이 그의 작품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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