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대검찰청 심리분석실. 김재홍 대검 행동분석관과 마주 앉은 50대 남성이 수개월 전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는 인천의 한 술집에서 여주인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성폭행한 적이 없고, 되레 술집 여주인이 자신에게 접근해왔다고 역정을 냈다. 자칫 방심했다가는 신고를 한 술집 여주인이 무고 혐의를 뒤집어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김 분석관은 면담하는 동안 남성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뜯어봤다. 몸짓은 어떤지, 손은 어디에 놓여 있는지, 목소리와 표정에 변화는 없는지…. 면담을 끝낸 김 분석관은 보고서를 작성해 검사에게 건넸다. 결론은 명료했다. ‘이 남성이 성폭행범이다.’
“‘귀찮은데도 술집 여주인이 계속 추파를 던졌다’고 진술했지만 면담 내내 그의 얼굴에서는 ‘두려움’과 ‘분석관이 과연 내 말을 믿을까 하는 불안감’을 읽을 수 있었어요. 죄를 짓지 않았다면 그 당시에 실제 느꼈다는 ‘귀찮음’ 같은 감정이 표출되어야 하거든요.”(김 분석관)
사건을 담당한 검사는 이 남성에게 김 분석관이 작성한 보고서를 들이밀었다. 하얗게 질린 그는 “죽을 죄를 지었다. 겁이 나서 거짓말을 했다”고 범행을 실토했다.
얼굴 표정과 몸짓만을 보고 상대방의 거짓말을 감지한 김 분석관은 ‘국내 1호’ 행동분석관이다. 전국에 2명밖에 없는 직업으로 ‘인간 거짓말 탐지기’나 다름없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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