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 19대총선서 13석 대약진… 패권주의·종북논란에 또 갈라서 제도권 진보정당이 존폐의 기로에 섰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13년10개월, 통합진보당 창당 1년11개월 만이다.
통진당 전신인 민노당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내세우며 출범했지만, 첫 선거인 2000년 총선에서 원내 진출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후 노무현정부 시절 당세를 크게 확장하는 계기를 맞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대통령 탄핵의 역풍을 타고 비례대표 8석(정당 득표율 13.1%), 지역구 2석을 확보하며 제도권 진입에 성공했다.
첫 위기는 2008년 분당이었다. 당내 민족해방(NL·자주파) 계열과 민중민주(PD·평등파) 계열이 혁신안을 놓고 벌인 힘겨루기가 화근이었다. 종북 논란이 번지면서 평등파가 탈당했다. 분당 후 치러진 18대 총선은 진보정당의 위기와 동시에 재통합 논의의 단초가 됐다.
총선에서 민노당은 비례 3석과 지역구 2석에 그쳤고, 탈당파가 중심이 된 진보신당은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민노당은 2011년 12월5일 노무현정부 출신으로 구성된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와 함께 통진당이라는 정파 연합체를 구성했다.
통진당은 19대 총선에서 민주당과 야권 단일화를 통해 13석(비례대표 6석, 지역구 7석)을 거머쥐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다. 하지만 이어진 비례대표 부정경선과 중앙위원회 폭력사태는 NL 계열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지역조직인 경기동부연합을 주축으로 한 자주파의 패권주의 논란과 종북 문제로 또다시 분당사태를 자초했다.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등 탈당한 인사들은 정의당을 만들었다.
여기에 경기동부연합의 실세로 알려진 이석기 의원의 등장은 당 존립을 크게 위협하는 상황을 불렀다. 이 의원은 지난해 6월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고 발언해 당내 종북 갈등을 표면화시켰고, 지난 9월5일 지하혁명 조직 RO의 총책으로 지목돼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통진당 출범 당시 “한국정치의 혁신을 가져 올 것”이라는 포부와 달리 헌법재판소 결정에 당 운명을 맡겨야 하는 처지다.
김달중 기자 da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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