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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태극기와 애국가, 평화통일의 상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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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1-20 22:00:34 수정 : 2014-01-20 22: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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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국가엔 우리민족 의식 압축
평화 사랑·자연친화적 사상 담겨
요즘 통일에 대한 기대가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국익 차원에서 남북통일에 비협조적일 것이라고 예상되던 중국마저도 협조적일 것이라는 낙관론마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한국의 국력이 강해졌으며 동시에 한국이 통일되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도 유리하다는 뜻이다.

통일 하면 많은 사람들은 으레 태극기와 애국가를 생각한다. 태극기는 한때 남북분단의 상징이기도 했다. 현재의 군사분계선은 바로 태극문양의 축소판이다.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북위 38도선으로 그어진 휴전선이 전쟁 결과 서쪽은 남쪽으로 더 내려오고, 동쪽은 북쪽으로 더 올라간 것마저 태극기의 형상 그대로다. 그런데 최근 태극기가 통일의 상징으로 바뀌고 있다. 음양은 합일되고 마는 것이니까. 태극음양사상은 한국과 중국이 오랜 옛날부터 공유해온 사상이다. 그런데 한국이 그 문양을 국기 문양으로 삼으면서 국제적으로 한국의 브랜드가 되고 말았다. 세계 국기 가운데 철학을 국기에 담은 나라는 없다고 한다. 태극기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게 우주론을 담고 있다. 중앙의 태극은 음양을 나타내고, 모서리의 막대는 동방 역(易)사상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복희씨의 팔괘 중에서 건곤감리(乾坤坎離: 하늘·땅·물·불)를 표시해 우주만물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축약했다.

지구상 국기의 대부분은 땅이나 계급을 나타내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의 성조기는 독립할 당시의 13개주(줄)와 나중에 편입된 50개주(별)를 표상한다. 영국의 유니언잭은 잉글랜드(붉은색 십자가)와 스코틀랜드(대각선 흰색)와 아일랜드(대각선 흰색의 붉은 줄)를 표상한다. 프랑스 국기는 자유(파랑)·평등(하양)·박애(빨강)를 표상한다. 중국의 오성기는 공산당, 노동자, 농민, 지식계급, 애국적 자본가 등 다섯 계급을 의미한다. 일본의 일장기는 태양을 상징한다. 노르웨이의 국기에는 7개국(인도네시아, 핀란드, 네덜란드, 프랑스, 폴란드, 태국, 모나코)의 의미가 숨어 있다.

한국인의 무의식에는 나라와 계급과 땅을 뛰어넘는, 그리고 자연의 끝없는 변화를 수용하는 어떤 커다란 용기(容器), 자연이라는 거대한 자궁과 같은 어머니가 있다. 그래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태극기와 함께 애국가도 우리 민족의 의식을 나타내는 상징적 노래이다. 애국가의 1절 가사를 보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후렴)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동해물은 바닷물인데 어떻게 마를 것인가. 백두산이 2744m인데 어떻게 닳을 것인가. 자연의 ‘있는 것에서 점차 없어지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이 영원할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무궁화(無窮花)의 무궁(無窮)은 무(無)자 하나를 달랑 쓴 것보다는 동양의 사상을 표현하는 데에 적합하다. ‘무궁’은 ‘다함이 없다’의 뜻이다. 국화인 무궁화를 빌려서 문화적으로 꽃피울 것을 꿈꾸었다는 것도 참으로 짧은 가사 속에 들어갈 것은 다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동해물과 백두산, 무궁화는 자연의 주어진 것을 인정하면서 변해가는 것을 인정하는 내용이다. 한국문화는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인 것을 특징으로 하는데 그러한 심정을 그대로 반영한 셈이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대한사람 대한으로’는 애국가의 클라이맥스이다. 이는 바로 존재를 존재 그대로 살게 하라는 본능적, 집단무의식적 주문이다. 일제식민 상태에서 ‘대한사람’을 ‘대한사람’으로 자유롭게 살게 하라는 한민족의 ‘렛 잇 비’(Let it be: 비틀스의 노래)인 셈이다. 애국가 2절은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이다. 산은 왜 남산(南山)이고 나무는 왜 소나무인가! 산에 소나무가 있는 광경은 한국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한국의 마을은 배산임수로 항상 눈앞에는 따뜻한 남산이 있다.

따뜻한 남쪽, 남산이 바라보이는 곳이 한국인의 이상향이다. 소나무는 한국의 상징나무이다. 소나무와 바람은 풍류(風流)를 연상시킨다. 가을의 서리(霜)는 소나무와 함께 그것 자체가 민족 기상(氣象)을 표상한다. 기(氣)를 중시하는 한민족이다. 애국가 3절은 참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자랑인 가을 하늘과 달을 주제로 한 매우 미학적인 구절이다. 2절에서 이어지는 한국인의 기상은 가을하늘과 같은 공활함에 이른다. “가을 하늘 공활(空豁)한데 높고 구름 없이/밝은 달은 우리가슴 일편단심일세/ 후렴생략” 공활(空豁)이 무엇인가. ‘텅 비어 매우 넓음’이다. 공(空)은 ‘빌 공’이고 활(豁)은 ‘뚫린 골 활, 열리다, 통하다’의 뜻이 있다. 가을의 푸른 하늘로 뚫려 있는 한국인의 마음이다. 그것이 밤이 되면 밝은 달로 더욱더 승화된다. 한국인은 달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밝은 달은 우리 가슴! 가슴에 달을 품고 있다는 뜻이고,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 가슴은 더더욱 일편단심(一片丹心)이다. 일편단심은 직역하면 ‘한 조각 붉은 마음’이다.

애국가 4절은 나라사랑으로 끝을 맺는다.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식민치하에서 온갖 고통과 서러움을 겪으면서 나라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는가. 인간은 개인적으로 아무리 높은 이상과 행복을 추구한다고 해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달성하는 데는 나라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애국가는 우리 민족의 압축된 은유이고 신화이다. 어떻게 짧은 가사 속에서 그러한 압축이 가능하게 됐는가 신비스러울 지경이다. 국기와 국가 속에 이미 그 민족의 무의식적 디자인이 다 들어있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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