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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문화수신국에서 반신국으로 전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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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2-03 21:09:53 수정 : 2014-02-03 21: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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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붐 타고 한글 세계화할 호기
문화 역량 축적해 영향력 키우길
갑오년 설날을 보내면서 그 어느 해보다 새 시대를 맞고 있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전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120년 전 갑오년 1894년은 갑오경장(甲午更張)이 있었던 해이다. ‘경장’은 옛 문화를 갱신하고 선진문화를 확장한다는 뜻이다.

우리보다 근대 과학문명을 먼저 받아들인 일본은 탈아론(脫亞論)을 주장하면서 정한론(征韓論)을 앞세우고 대동아공영권을 노리고 대한제국의 주권을 빼앗기 일보직전이었다. 1894년은 갑오경장 이외에도 동학란, 청일전쟁 등이 일어난 해로 먹느냐, 먹히느냐의 기로의 해였다.

그 후 우리는 120년이란 역사의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동안 광복과 남북분단, 그리고 동족상잔의 6·25를 거쳤다. 1960년을 전후해서 민족의 웅비를 시작하여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민주화와 함께 오늘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는 등 중선진국, 강소국으로 등장하였다. 올림픽도 치르고 월드컵도 마쳤다. 이제 지구촌에서 한국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의 나라가 되었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역사를 바라보는 데는 여러 관점과 시각이 있다. 지배와 권력을 중심으로 정복과 침략, 식민과 피식민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을 문화의 발신국과 수신국의 개념으로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오랜 문화수신국의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십여 년 전부터, TV드라마 ‘겨울연가’(2002년), ‘대장금’(2003∼2004년)이 일본과 중국에서 광팬들을 몰고 다녔다. 본격적인 한류(韓流)가 시작된 것이다. 최근엔 K-POP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지난 한 해 문화콘텐츠 부문의 수출이 흑자로 돌아섰다고 한다.

지금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세계 곳곳에 즐비하다고 한다. 한글을 세계화할 호기이다. 한글이 인류 최고의 과학적인 문자이고, 배우기 쉬운 문자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세계 모든 문자의 발음을 한글로 표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머지않아 한국어가 세계 공통어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세종대왕은 참으로 성군 중의 성군이다. 세계적으로 여러 훌륭한 군왕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백성을 사랑하여서 문자를 직접 창제한 왕은 없었다. 한때 한국의 대통령들은 취임의 변에서 당(唐) 태종의 ‘정관정요(貞觀政要)’를 본받는다고 하였고, 미국의 링컨 대통령을 닮고 싶다고 피력하곤 했다. 세종대왕만큼 훌륭한 치자가 없는데 왜 하필 그 먼 곳에서 모범을 찾았다는 말인가.

한글을 세계적인 문자로 만들어가는 것은 한국이 세계적인 주도권을 잡아가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이제 우리도 해외 공관의 부설 문화원을 ‘세종하우스’ 혹은 ‘세종문화원’으로 만들어갈 때가 된 것 같다. 독일의 ‘괴테하우스’처럼 말이다.

세종하우스는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공간으로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세계에 한글보급은 바로 한국문화의 세계화에 일등공신이 될 것이다. 여기에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삼성과 LG가 스마트폰에 한글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탑재한다면 금상첨화이다. 예컨대 ‘세 시간 만에 한글읽기’ ‘하루 만에 한글완성’ 등….

우리는 고유명사와 상징어를 사용하는 데에 인색하다. 보통명사의 익명성으로는 세계인의 가슴에 한국문화를 심을 수가 없다. 가급적이면 그 분야에 최고인물의 이름을 따서 자국의 문화를 선전해야 한다. ‘손기정 육상경기장’ ‘김연아 아이스링크’ ‘박지성 축구경기장’ ‘정경화 음악홀’ ‘싸이 K-팝 공연장’…. 얼마나 친근감이 있는가!

그런데 한국문화의 발신국으로의 전향에 치명적 약점들이 있다. 한국문화의 최대 약점은 뭐니 뭐니 해도 세계적인 철학자가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철학이 없는 나라가 세계를 지도한 적이 없다. 철학은 그 나라 문화의 등뼈와 같은 존재로 자신의 철학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진정한 선·후진국이 갈린다.

두 번째 약점은 세계적인 작곡가가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철학과 음악은 매우 친연성이 있는 분야이다. 그래서 철학이 없는 나라가 훌륭한 음악가를 탄생시키기는 어렵다. 독일이 음악의 나라이면서 철학의 나라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럽의 각국들은 저마다 ‘국민음악가’ ‘세계적인 음악가’를 가지고 있다. 국민음악가란 민족적인 음악전통을 토대로 하면서도 세계적인 음악의 레벨에서 공인된 작곡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나의 조국’으로 잘 알려진 스메타나(체코), ‘신세계’ 교향곡의 드보르자크(체코), ‘솔베이지 송’의 그리그(노르웨이), ‘핀란디아’의 시벨리우스(핀란드), 알베니츠, 팔랴(스페인) 등이 있다. 또 폴란드의 쇼팽,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헝가리의 리스트, 이탈리아의 베르디 등 음악적 평준화를 이루었다.

한국문화의 약점 세 번째는 아직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문학이 자국문화의 특수성을 토대로 하면서도 세계적 보편성에 도달한 작품이 결여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한국인들은 아직도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하다. 남을 흉내 내기에 급급한데 어떻게 세계적인 작가가 탄생하겠는가. 문화의 수신국에서 발신국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것이다.

경제성장만 되었다고 선진국 운운하다가는 언젠가 경제가 벼랑에서 떨어질 때 함께 추락하게 될 것이다. 문화적 축적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문화야말로 국력의 저장고이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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