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수탈 관련 57건 서울 강서구의 마곡 택지 조성 현장 한쪽에 낡아빠진 건물 한 채가 생뚱맞게 서 있다. 벽 가득한 낙서, 깨진 창문, 무너져 내린 천장이 딱 폐가의 몰골인 이 건물은 놀랍게도 문화재다.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 등록문화재(형성된 후 50년이 지난 근대문화유산) 363호다. “일식 목조건물로… 일제강점기 농업 관련 배수펌프장으로 유일하며 농업사, 건축사에서 가치가 높은 건물”로 평가받는다.
‘구 서울역사’, 한때 전국 철도망의 중심이었고, 지금은 ‘문화역 서울 284’라는 간판을 달고 각종 문화행사장으로 활용 중이다. 여기서 일제 강점의 치욕을 읽어내기란 어렵다. 사적 284호인 구 서울역사는 전쟁물자를 공급하던 수탈정책의 기본 운송수단인 기차의 집합지였다. 건물이 세워지기 전이긴 하지만 1919년 8월 신임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의 동상 정도가 이 일대가 품은 아픈 역사를 증언한다.
구 서울역사는 일제강점기 수탈과 착취 등 아픈 역사를 증언하는 ‘네거티브 문화재’로 분류된다. 문화재청 제공 |
14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수탈과 관련된 지정문화재(엄격한 규제를 통해 보존하는 문화재)는 5건이다. 구 서울역사를 비롯해 구 서대문형무소, 구 제일은행본점, 구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부산지점과 목포지점이다. 독립투사 고문, 금융·식량·인력 탈취의 수단이었다. 등록문화재는 52건에 이른다. 일본군 군사시설이었던 제주의 동굴진지와 지하벙커 등은 수탈 관련 문화재, 전남의 구 보성여관, 전국에 산재한 일본식 가옥과 사원 등은 일본 양식의 시설문화재다.
경기대 건축대학원 안창모 교수는 “문화재의 가치는 역사의 교훈을 전하는 것”이라며 “자국민에게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가해자의 만행을 널리 알리는 수단이 되는 네거티브 문화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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