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흐드러져 생명 넘치는 계절, 기성세대들의 머리에는 ‘4월 혁명(革命)’의 이미지도 함께 떠오른다. 그 이미지들은 어느새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과 섞인다. 미국 출신의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의 문명비판 시 ‘황무지’(The Waste Land, 1922)의 첫 대목 기억이 자연의 현상, 역사적 사실과 함께 소용돌이치는 것이다. 게다가 봄비라도 내려버리면….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 피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잃은 뿌리를 깨운다.)
절망이기도 하나 끝내 희망의 끈을 놓아 버리지는 않는, 봄의 생명력 때문에 황무지의 생명 잃은 땅을 더 안타까워하며 비웃는다. 그 천재는 자신의 시 ‘잔인한 4월’을 힌두어(語) ‘샨티’(Shantih)를 세 번 외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마음의 평화’란 뜻이다. 4월 영령(英靈) 지내시는 수유리 4·19 묘소에도 꽃은 피어난다. 이렇게, 꽃 같은 이들의 넋은 우리와 함께 산다.
영국 시인 T S 엘리엇(1888∼1965). 그의 1922년작 ‘황무지’는 지식인들이 4월 하면 떠올리는 ‘견고한’ 이미지들 중 하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동물의 가죽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옷이다. 자신보다 더 크고 힘도 센 동물들까지도 머리(두뇌)로 제압하여 고기를 먹고 가죽은 입거나 덮었다. 처음에는 사냥한 다음 껍질을 벗겨 털이 있는 채로 활용했을 것이다. 이 가죽은 피(皮)다. 우리에겐 ‘피상적’(皮相的)이라는 말로 더 익숙하다. 이내 털[모(毛)]을 깎아내는 방법을 익혔다. 털이 제거된 가죽이 혁(革)이다.
혁(革) 글자의 고문자와 그 글자를 설명하는 그림. 이락의 지음, ‘한자정해’에서 발췌했다. |
피(皮)는 금문 시기에 생겨난 글자로 본다. 형태로 보아 입을 크게 벌린 동물의 등짝을 손으로 잡고 껍질(가죽)을 벗겨내는 모양이다. 물론 글자 아랫부분의 손 그림(오른쪽 하단 사진)은 그 이전 시기인 갑골문에서부터 발견되는 그림글자다. 두 그림을 레고 조각처럼 붙여 한 글자를 만든 것이다. 그림글자, 곧 상형문자의 뜻이면서 기본 얼개다. 문자(한자)의 본질이다.
그 손 모양 그림은 또 우(又)자로 발전해 수많은 글자의 재료나 부속품이 됐다. 벗 우(友)나 좌우(左右) 글자에 들어있는 우(又)자나 우(又)자와 닮은 획은 기본적으로 ‘손’의 뜻을 품는다. 우(友)는 두 사람의 손이 만나는 모양이고,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좌우(左右) 글자의 윗부분은 왼손과 오른손이다. 왼손은 만드는[공(工)] 손, 오른손은 먹는[구(口)] 손이라는 뜻이 담겼다.
혁(革)으로 가공하기 이전의 가죽인 피(皮) 글자의 고문자. 이락의 지음, ‘한자정해’에서 발췌했다. |
혁명은 ‘이전의 왕정(王政)을 뒤집고 다른 왕정 또는 정치세력이 대신하여 통치하는 일’,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 등의 뜻으로 해석된다.
가죽 가공과 관련한 공업에서 생겨난 글자가 이렇게 ‘혁명’이라는 생뚱맞은 정치 분야의 글자로 쓰이게 됐다. 문자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인신(引伸)이라고 해석한다. 당기고(引) 펴서(伸) 원래의 뜻을 늘려(확대해) 쓴다는 것이다.
생전의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스마트폰을 들어 보이며 밝게 웃고 있다. 스마트폰이 일으킨 변화를 흔히 ‘손 안의 혁명’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혁명이란 말을 비유법으로 활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그 여러 ‘혁명’들이 T S 엘리엇이 품은 4월의 염원처럼 인류에게 마음의 평화, 즉 ‘샨티’를 지어주는지를 톺아본다. 역사의 또 한 의의(意義)일 터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장 ceo@citinature.com
■사족(蛇足)
쿠테타, 구테타, 구데타, 쿠데타, 뭐가 맞지? 이 단어를 어떻게 읽어야 해? 정변(政變), 반란이란 뜻의 이 외래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헷갈려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무력(武力), 즉 총칼로 정권을 빼앗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신문·방송에서는 물론 역사에서도 그 비중은 결코 가볍지 않다.
신문기사 데이터베이스를 보자. 1979년 12·12 쿠데타 때 신군부에 맞서 싸우다 순직한 고(故) 김오랑 중령에게 보국훈장이 추서된다는 기사, 최근의 북한 사태에 관해 ‘장성택 쿠데타를 최룡해가 역(逆) 쿠데타로 진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논평도 있다.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에서 자주 벌어지는 쿠데타 상황은 비극적이다. 프랑스 말, 정치용어다.
영어 리볼트’(revolt), 리벨련’(rebellion), 업라이징’(uprising) 등과 비슷한 뜻인데, 영어권 사람들도 자기네 이런 낱말들보다 “아, 쿠데타(coup d’etat) 말이지요!”라고 할 정도로 국제화된 말이다. 그 철자 그대로 영어단어로도 쓴다. 영어권에서는 프랑스어 발음 규칙을 마다하고 ‘쿠데타트’로 읽는 사람도 있다.
‘쿠데타’로 읽는 것이 어문 규정상 맞다. 국립국어원은 외래어 또는 자주 쓰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어떻게 읽고 쓰는지를 규정해 두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의 본토 발음은 ‘꾸데따’로 들린다. 그 말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발음이 헷갈리지 않을 터다.
coup(쿠)는 때리는 것, 충격 등의 뜻이다. coup만으로도 ‘반란’의 뜻으로 쓴다. d’etat[데타]는 전치사 de(영어의 ‘of’)와 정치체제라는 단어 etat를 함께 써서 줄인 말, ‘정치 체제의’ 정도의 뜻으로 풀면 되겠다. 나란히 써서 쿠데타가 되는 것이다. 정치를 두들겨 패서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니, 혁명과는 의당 차이를 둬야 한다.
쿠테타, 구테타, 구데타, 쿠데타, 뭐가 맞지? 이 단어를 어떻게 읽어야 해? 정변(政變), 반란이란 뜻의 이 외래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헷갈려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무력(武力), 즉 총칼로 정권을 빼앗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신문·방송에서는 물론 역사에서도 그 비중은 결코 가볍지 않다.
신문기사 데이터베이스를 보자. 1979년 12·12 쿠데타 때 신군부에 맞서 싸우다 순직한 고(故) 김오랑 중령에게 보국훈장이 추서된다는 기사, 최근의 북한 사태에 관해 ‘장성택 쿠데타를 최룡해가 역(逆) 쿠데타로 진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논평도 있다.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에서 자주 벌어지는 쿠데타 상황은 비극적이다. 프랑스 말, 정치용어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를 찾은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해마다 4월이면 우리 역사의 아름다운 ‘꽃’들이 누워 있는 이곳에 시선이 쏠리면서 기분이 숙연해진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쿠데타’로 읽는 것이 어문 규정상 맞다. 국립국어원은 외래어 또는 자주 쓰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어떻게 읽고 쓰는지를 규정해 두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의 본토 발음은 ‘꾸데따’로 들린다. 그 말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발음이 헷갈리지 않을 터다.
coup(쿠)는 때리는 것, 충격 등의 뜻이다. coup만으로도 ‘반란’의 뜻으로 쓴다. d’etat[데타]는 전치사 de(영어의 ‘of’)와 정치체제라는 단어 etat를 함께 써서 줄인 말, ‘정치 체제의’ 정도의 뜻으로 풀면 되겠다. 나란히 써서 쿠데타가 되는 것이다. 정치를 두들겨 패서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니, 혁명과는 의당 차이를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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