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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국가(國家), 가국(家國), 마피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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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5-19 22:02:59 수정 : 2014-05-19 22: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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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부정을 정의 구현으로 착각
조폭권력 같은 집단이기 국가 위협
한국이 하나의 국가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힘은 국가권력, 즉 국가의 공권력이나 공권력 체계가 아니라 여러 레벨에서 비공식적으로 구성된 가족이 이끌어 가는 패밀리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른바 ‘가국(家國)’이다. 가국의 성격이 강하면 강할수록 국가는 내분과 갈등에 휩싸이고 무법과 불법의 천지가 된다.

근대에 들어 가족국가 혹은 가국의 의미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국가 공식 조직이 아니라 사적으로 혹은 이익집단으로 구성된 조직, 심하게는 깡패 조폭사회도 여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만큼 국가에 대한 믿음과 충성도가 떨어지는 나라는 없다. 요즘 세월호 이후 일련의 사태를 보면 오합지졸의 집합소 같다.

그 이유의 원천을 보면 역사적으로 권력 엘리트들이 백성(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서 가렴주구를 일삼았을 뿐 아니라 외침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의 뼈아픈 경험과 분단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못하고 민족적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다.

구한말, 남북분단, 6·25를 통해 보면 한민족은 국가를 영위하기에 충분한 민족은 되지 못한다는 의구심이 생긴다. 국민 개개인은 똑똑한데 이상하게도 집단이 되면 내분에 빠지거나 합리적으로 국가를 유지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거나 외침을 스스로 불러 모으니 말이다. ‘평화애호민족’이나 ‘평화주의자’라는 말은 역사적 위로이다.

외침이 있으면 적어도 이를 막을 군사력과 힘을 갖춰야 지구상에서 국가의 일원으로 살아갈 자격이 있다. 한때 ‘유비무환(有備無患)’의 통치자도 있었지만, ‘민주화’가 되자마자 결국 경제신탁통치라는 IMF 사태를 맞았다. IMF 사태는 바로 민주주의운동을 이끌어온 중심인물들의 갈등과 정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IMF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국가 재산은 반 토막이 나고 건실한 기업이나 은행의 주식은 반 정도가 외국인 손으로 넘어갔다. 이로 인해 우리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더욱 심화되었다. IMF 사태가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재 글로벌 기업이라고 하는 삼성과 LG, 포철, 주요 은행들 수익의 반은 외국투자자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기업들은 한국의 기업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착시현상일 뿐, 이들의 수입과 고용은 한국의 것이 되지 못한다. IMF 사태는 바로 한국 민주주의의 허구와 이념적 서구 흉내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이 한국이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지표는 괜찮은데도 빈곤계층과 청년실업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의 발전이라는 것이 빈껍데기인지도 모른다.

IMF 사태는 분명하게 반성되지 못했다. 그것이 최근의 세월호 사태로 떠오른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비상하는 데에 발목을 잡은 것이 바로 한국인의 ‘내용 없는 민주주의’, 이념적 서구종속이다. 통일 논의만 하더라도 민족주체적인 측면은 간 곳이 없다. 6자회담은 통일에 대한 주변 강대국의 간섭을 스스로 열어준 꼴이고, 4대국 보장론 등은 정말 지독한 사대적·식민지적 천박한 노예론의 발상이다.

한국인만큼 자신의 국가체제나 권력체계에 대해 불신하거나 저항을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마치 체제 부정이나 저항을 하는 것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인 양 생각하는 운동권 인사들이 많은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IMF 사태 이후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국가적 재난 사태는 ‘가국의 한국’이 마피아사회가 될 위험에 직면하고 있음을 경고하기에 충분하다.

농업사회 때의 가족주의 혹은 족벌주의(despotism)는 폐단이 있긴 하였지만 인정과 공동체정신으로 사회를 이끌어 가면서 사회를 묶어주는 중간집단으로서의 순기능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급속하게 진행된 산업화와 자본주의화 속의 가족주의는 사리사욕이나 집단이기,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다. 현재 한국의 가국적 성격은 국가 해체의 위험을 부르고 있다. 성급한 지방자치로 인한 지방자치단체의 해외 빚과 지방의회의 정치낭비는 국민혈세를 탕진하고 있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한국은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대국 안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인이 열심히 일한 덕분이지만 국제정세도 한국에 유리하게 전개된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고도성장의 후유증을 사회 곳곳에서 앓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잘사는 나라이면서 행복지수는 100위권 밖에 밀려 있다. 자살률과 이혼율이 세계 1위인 나라이다. 또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둘러싸여 있다. 아직 휴전 중인 나라이면서도 안전불감증에 빠져 있다. 설상가상으로 민족주의나 민주주의를 가장한 민중주의, 체제부정적 사고와 맞물린 독선주의, 민족이나 국가를 생략한 세계주의나 보편주의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휘청거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미국 뒷골목 상권의 암투를 그린 영화 ‘대부’는 너무도 잘 알려진 이탈리아 시칠리아계 마피아를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패밀리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조직폭력배의 영화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그 속에 가족주의라는 철학이 잠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의 패밀리는 국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청산해야 할 조폭권력이다.

만약 국가가 이러한 가국으로 분열된다면 어떻게 될까. 답은 간단하게 지구상에서 그러한 국가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가국이나 마피아로 분열되거나 돌아가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아직 근대적 의미에서 국가라고 하기에는 여러 가지 점에서 부족하다. 북한은 더더욱 그렇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아직 근대적 국가로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고 있고, 더욱이 선진국이 되기에는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음을 자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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