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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보다 아픈 편견에 우는 뇌전증 환자

입력 : 2014-07-31 20:57:41 수정 : 2014-07-31 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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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간질→뇌전증으로 용어 바꿨지만… 갈길 멀어 “하루하루가 고통스럽습니다.” A(30)씨는 5년전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발작 증상을 경험했다. 병명은 뇌전증이었다. 약물 치료를 하면서 증상은 나아졌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뇌전증이란 사실을 알리자 취직에 번번이 실패한 것이다. 병을 숨기고 들어간 회사에서도 우연히 병명이 밝혀지면서 해고를 당했다. 단기 계약직을 전전하던 그는 결국 지난해부터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밖에 나가길 꺼리면서 대인관계도 끊어졌다. 그는 “약을 먹으면서 최근 몇년간 발작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만날때면 날 이상하게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없어진다”며 “병 자체보다도 편견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털어놨다.

뇌전증 환자들이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가 ‘간질’이란 명칭을 쓰지 않기로 하는 등 인식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차별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3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복지부는 최근 최근 ‘감영병의 진단기준’을 개정하면서 법령 용어 상 ‘간질’을 ‘뇌전증’으로, ‘간질발작’을 ’뇌전증발작’으로 바꿨다. 간질이란 단어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민간 의료계는 이같은 이유 때문에 2010년부터 간질의 공식 명칭을 뇌전증으로 고쳐부르고 있다.

뇌전증이란 뇌신경세포가 과도하게 흥분되거나 억제되면서 신체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경련성 발작을 일으키거나 의식을 잃는 증상을 말한다. 100명 중 한명 정도가 앓고 있을 정도로 비교적 흔한 질병으로,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만 40만명 정도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복지부의 결정에 대해 관련 협회 등은 우선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뇌전증협회의 한 관계자는 “의학은 발달하지만 차별은 갈수록 더 심해지는 면이 있다. 다른 장애에 비해 장애 등록율이 현저히 낮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며 “간질이란 단어가 주는 편견과 사회적 낙인이 있기때문에 이번 결정이 인식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용어 변경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뇌전증 환자들이 취업 등 일상생활에서 많은 불이익을 당하고있는만큼, 실질적 제도 개선 등의 적극적 노력이 수반돼야한다는 것이다. 실제 환자의 70∼80%는 약물치료로 발작이 완전히 조절되고 정상생활이 가능하지만, 경중 차이 없이 뇌전증을 앓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해고 되는 등 병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뇌전증학회 따르면 취업시 뇌전증 환자라는 것을 알리면 60%가 취업을 거절당하고, 직장 생활 중 뇌전증 환자임이 밝혀질 경우 40%가 해고 처분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녀를) 뇌전증환자와 결혼시키겠는가?”란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한 비율은 60%로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높았다. 반면 선진국의 경우 반대율은 5%에 그쳤다. 뇌전증 환자의 실업률은 비장애인의 1.7배였으며, 이혼율은 3배, 미혼율은 2.6배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환자 10명 중 7명은 우울증을 앓고있었으며, 병을 숨기거나 심지어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B(26·여)씨도 최근 고민이 크다. 어릴때부터 뇌전증 치료를 받아온 B씨는 몇년 전 수술을 하면서 발작 증상은 없어졌지만, 남자친구에게 뇌전증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B씨는 “평생 속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만 남자친구 집에서 사실을 알면 결혼을 반대할 것 같아 두렵다”며 “하나의 질병일 뿐인데 뇌전증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너무 큰 것 같아 괴롭다”고 토로했다.

뇌전증협회에서는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주변사람에게서 발작 증상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평소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을 인식 하고, 심폐소생술을 배우는 것처럼 발작시 대처법을 습득할 수 있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중증질환 등록 등 정부의 치료 지원 확대도 주문했다. 암·뇌혈관 등 중증질환으로 등록된 질병의 경우 수술시 환자의 부담은 5%지만, 뇌전증은 20%에 달한다. 연간 수술이 500건에 그치는 것도 비용 부담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용어 변경은 인식 개선의 시작에 불과하다”며 “치료 지원과 인식 교육 등 차별을 없앨 수 있는 실질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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