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국회’로 정기국회의 문을 ‘반짝’ 열었던 정치권은 ‘개점휴업’에 돌입할 태세다. 여야 모두 상대방의 ‘전향적 태도’를 요구하며 뒷짐만 지고 있어 세월호 특별법과 민생법안의 추석 전 처리는 사실상 물 건너가는 모양새다.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협의할 여야의 능력도,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朴대통령, 탈북·다문화 가정 어린이 격려 박근혜 대통령이 추석 연휴를 앞두고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있는 탈북·다문화 가정 어린이 지원시설인 무지개청소년센터를 찾아 한국어를 배우고 있던 한 소년의 어깨를 감싸며 격려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앞서 이날 오전 에너지 신산업 대토론회에 참석해 “민간에게 진입장벽을 다 풀어줘야한다”고 밝혔다. 또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년벤처창업인으로부터 받은 선물 사진을 올리며 감사의 뜻과 함께 청년 창업인들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허정호 기자 |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 계류된 90여개 법안을 추석 연휴 뒤인 15일 세월호 특별법과 분리해 우선 처리하자고 여야 원내지도부에 제안했다. 정 의장은 의장성명을 내고 “후반기 국회가 석 달이 넘도록 한 건의 법안을 처리하지 않은 것은 불명예이자 국민생활과 정부 운영에도 큰 우려를 낳고 있다”며 여야 합의를 압박했다. 그러나 여야는 모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새누리당은 “시급한 법안은 먼저 처리해야 한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은 “동시처리해야한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연합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이날 오후 이 부의장실에서 30여분간 만남을 가졌다. 정국 정상화 방안이 논의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으나 양측은 “정치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여당은 청와대, 야당은 세월호 유가족의 눈치만 보느라 식물국회, 국정마비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여권 핵심부는 진상조사위에 기소권, 수사권을 부여하라는 유족과 야당 내 강경파 주장을 수용하면 1년 이상 조사위의 칼끝이 청와대를 겨눌 가능성이 높음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이완구 원내대표 등 친박(친박근혜) 지도부로선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부담이 크고, 그만큼 재량권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새정치연합도 진퇴양난이다. 지도부가 유족 의견을 반영한 특별법 제정을 공언한 터라, 자체적인 협상 카드를 제시할 수 없는 처지다. 여당 양보를 기대하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할 길이 없는 셈이다. 내후년까지 전국 선거가 없는 점도 여야의 절충을 더디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선거가 있다면 표심에 민감한 정치권이 마냥 정국 파행을 내버려둘 리 없기 때문이다.
◆여야, 민생 핑계로 면피성 따로 행보
여야는 이날도 각자 일정을 이어갔다. 민생을 내세웠으나 식물국회 방치에 대한 비난 여론을 비껴가려는 ‘면피성 행보’라는 평가가 많다. 추석 연휴 민심을 잡으려는 여론전 성격도 읽힌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 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안전’을 강조하며 민생행보에 나섰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박 위원장은 이날 최근 폭우로 가동이 중단됐던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전 2호기를 돌아본 뒤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지금 추석을 앞두고도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의 아픔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의 국회 밖 스케줄에는 더 이상 여당과 협상의 진전이 어렵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김영우 수석대변인 등은 전북 무주의 태권도원 개원식에 참석했다. 당은 ‘경제회복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됩니다’라는 홍보물을 제작해 전국 당협에 배포해 국회에 계류 중인 규제 완화와 서비스산업 발전, 복지 법안 등을 처리해 일자리 창출과 소외계층 지원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회정상화를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 기자회견’에서 전·현직 교수 등이 세월호 사고 발생 이후 국정이 마비된 국회를 정상화시키고 민생-경제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범준 기자 |
새누리당은 추석연휴가 끝난 뒤 야당과 정기국회 의사일정 협상을 위한 접촉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 원내대표는 “추석 이후에는 반드시 국회를 정상화시켜 국가 안전과 민생개혁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세월호 특별법 우선 처리를 요구하는 강경파의 주장에도 파행국회를 방관하지 않고 국회 정상화를 위해 소신을 펼치시는 새정치연합 온건파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야당 내 온건파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는 꼴이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선 마지막까지 양보할 만큼 했다”고 못박았다.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비상행동 지속, 국민안전 현장방문, 정기국회 참여 활동을 중심으로 한 ‘3트랙 전략’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강경론이 비등해 섣불리 협상에 나서기도 어렵다.
박세준·박영준 기자 3ju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