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투명인간’ 같은 거리의 사람들, 노숙인이다. 노숙인은 올해 초 기준 서울시에만 4600여명에 달한다. 과거 노숙인 정책은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들도 사회의 일원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각종 질병과 범죄에 노출돼 있을 뿐 아니라, 2세 양육 및 성(性) 인식에 관한 문제도 심각하다. 노숙인이 많은 지역에서는 그들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지원단체와 인근 상인·주민들 간 갈등까지 존재한다. 경제적 지원보다 자활 의지를 높이는 쪽으로 노숙인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잊혀진 사회적 약자인 노숙인들의 문제와 해결책을 3회에 걸쳐 짚어 본다.
2011년 집 없이 지하철과 공중 화장실에서 하루를 보내는 ‘화장실 삼남매’ 사건이 알려지면서 한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소외 계층을 찾아내겠다고 밝혔다. 중점 발굴대상은 공원이나 화장실 등에서 생활하는 저소득 빈곤계층은 물론 빈곤·학대·유기·방임 위기에 처한 아동과 청소년도 포함됐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사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방치된 아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노숙인 엄마와 함께 생활하는 성우(4·가명)가 지난 10일 서울역 앞 광장에 설치된 노숙인 체험 행사용 박스 사이에서 놀고 있다. 이지수 기자 |
오후 내내 서울역 앞 광장에서 노숙인들과 생활하는 노숙인 2세 성우(4·가명)는 우리 사회가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충분히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는 아이다. 관할 구청과 아동보호기관이 2년 전 누나 2명을 방임한다는 신고를 받은 뒤부터 성우 엄마 김모(38)씨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기관 모두 경제적 지원에만 신경썼을 뿐 성우가 실제 어떻게 생활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21일 용산구청에 따르면 성우의 엄마는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매달 주거급여와 생계급여로 65만원과 성우의 어린이집 비용 등을 지원받는다. 구청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주거지원을 한 뒤 매달 가정방문을 하고, 통화도 수시로 한다”고 밝혔지만 성우가 노숙인들과 지내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전에 (성우 엄마가) 아이를 서울역에 데리고 가길래 그러지 말라고 권유했는데, 최근까지도 데리고 다니는 것은 몰랐다”면서 “우리가 하루종일 따라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강제로 서울역에 못 나가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해명했다.
구청과 함께 정기적으로 성우네를 관리해왔다는 마포아동보호전문기관은 취재 다음날인 지난 16일 부랴부랴 경찰과 함께 현장조사를 실시했고, 성우 엄마가 아이를 양육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현재 성우는 누나들이 있는 시설로 옮겨진 상태다. 담당자들이 좀더 성우네 가정에 신경을 썼더라면, 상황이 벌써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성우(4·가명)와 연주(3·가명)가 지난 10일 서울역 광장에서 맥주를 마시는 노숙인들 사이에 앉아 있다. 이지수 기자 |
세 살 지은(여·가명)이 역시 일주일에 한두 번 서울역에 나온다. 오빠 지형(9·가명)이가 몸이 안 좋아 엄마와 함께 자주 병원에 다니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가 지은이를 친분있는 노숙인들에게 맡기고 일을 하러 가기 때문이다. 10년 전부터 서울역 앞에서 노숙을 했던 지은이의 엄마와 아빠는 현재 국가 도움으로 임대주택에 입주해 산다. 서울역 앞에 맡겨진 날이면 지은이는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하루종일 다른 노숙인들 틈바구니에서 먹고 잔다. 지은이네도 당장 거주지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양육에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성우 엄마처럼 아이를 방임하는 것은 ‘아동학대’가 될 수 있다. 아동복지법은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 외에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도 학대로 규정한다. 아이를 불결한 환경이나 위험한 상태에 방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방임된 아동은 대부분 우울, 낮은 자아존중감 등 정서상 문제를 겪는다. 또 학교 부적응, 도벽 등 행동 이상과 영양결핍 등 신체 건강 이상 문제도 빈번히 발생한다.
노숙인이 아이를 방임하고 있다고 판단될 경우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나서서 아이와 부모를 분리 조치하지만, 단순히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떨어뜨려 놓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노숙인 2세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위생이나 언어와 관련한 기초적인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 때문에 시설에 옮겨지더라도 다른 아이들과 섞이지 못하거나 학습 장애를 겪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인이 된 이후 안정된 일자리나 거주지를 갖지 못해 시설 등을 전전하다 노숙인이 되는 사례도 종종 있다. 노숙이 ‘대물림’ 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노숙을 해온 서민철(가명)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현재 30대가 됐지만 여전히 거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폭력적인 성향과 도벽도 가지고 있다.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릴 때부터 체득한 것이다. 홈리스행동의 황성철 활동가는 “모든 노숙인 2세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방치하면 서씨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며 “노숙인 2세들은 그 나이에 받아야 할 기초적인 교육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만큼 지속적인 관심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역에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밥사랑공동체의 박희돈 목사는 2011년부터 노숙인 2세를 위한 어린이집을 운영 중이다. 현재 2∼5세 아이 4명이 이곳에 다닌다. 부모들은 쪽방촌이나 쉼터에 거주하는 노숙인이다. 박 목사는 “보통 부모들은 본인은 못 먹더라도 자식은 잘 먹이고 싶어하는데 노숙인들은 그런 인식이 없고, 오히려 애들을 내세워 지원금을 받고 유흥비로 쓰기도 한다”며 “노숙인 2세들은 기본적인 배변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욕설과 비속어를 접하며 살다보니 다른 아이들과는 쓰는 언어가 달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데 경제적 지원 외에 교육 등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기철 동덕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현재 노숙인복지법에서는 ‘18세 이상’만 노숙인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노숙인 지원 시스템에서는 노숙인 2세 지원 정책이 빠져 있다”며 “노숙인 2세들도 법 테두리에 포함해 교육·양육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유나·최형창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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