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견 수용할 수 있는 태도 갖추고
자유로운 소통 분위기로 시스템 개선” 초등학생들이 서로 손을 들고 질문하려는 것과 달리 고등학생만 되어도 질문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선 이들은 은연중에 침묵을 강요당하고, 스스로 입을 닫는다.
‘침묵’에서 비롯된 한국 사회의 병폐가 속속 드러나면서 ‘말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조직 내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자유롭게 토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성균관대 강영진 갈등해결연구센터장은 21일 ‘침묵사회’ 탈출을 위해 ‘내부 민주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화 운동을 통해 국가 차원의 독재체제를 타파했듯이 더 작은 단위의 조직들도 민주화를 이뤄야 한다는 설명이다. 강 센터장은 최근에 일어난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이나 ‘땅콩회항’ 사건 등은 조직 내부에 여전히 봉건주의, 독재체제가 남아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강 센터장은 민주주의 확립의 핵심으로 ‘법치주의’를 꼽았다. 그는 “‘내부 고발자’ 문제도 내부의 법치가 실종돼 외부로 부당함을 알리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라며 “격식이 잡힌 회의 형태든, 자유로운 소통의 형태든 내부적인 규칙과 절차에 따라 의사 결정에 이르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도 ‘소통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 내 민주주의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설 교수는 “세계일보의 ‘침묵사회’ 시리즈 보도를 통해 집단적인 압력으로 인해 개인이 침묵하고 있는 현실이 낱낱이 드러났다”며 “서로 찬반, 옳고 그름을 논하는 ‘토론’의 형태가 아닌 협의를 목적으로 하는 ‘토의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를 뿌리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각 조직이 목표 설정을 적절하게 해야 한다고 설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교육’의 경우 궁극적인 목적이 지식의 결과에 있는지, 과정에 있는지 등에 따라 소통 방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는 다른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우선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실상 토론 수업을 해보면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데 ‘정답’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아예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토론이나 의견표명을 하는 것을 장려하려면 표현이 수용되는 문화가 전제돼야 한다”며 “토론 주도자, 정치인, 정책결정자 등이 의사 결정을 하기 전 여론을 반영하려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권이선·최형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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