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광복 70년, 바꿔야 할 한국사]“백제가 고대 일본 사실상 통치… 국사교과서 바뀌어야”

관련이슈 광복70년, 바꿔야 할 한국사 , 세계일보 창간 26주년 특집

입력 : 2015-01-30 06:00:00 수정 : 2015-02-05 13:53:3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세계일보 창간 26주년 특집]
한·일고대사 연구 최재석 고려대 명예 교수
1시간30분 정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구순의 노학자는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다. 학문적 업적을 일궈가던 시절을 회상할 때는 아이처럼 즐거워했고, 주류 사학계를 비판할 때는 화가 난 듯도 보였다.

비전공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자신의 주장을 배척했던 사학계의 높은 장벽을 이야기할 때는 깊은 절망을 내비쳤다. 고려대 최재석 명예교수가 걸어온 학문의 길이 그랬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친 최 명예교수는 한국 고대 사회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한·일 고대사 왜곡에 크게 놀랐다. 그는 한·일 고대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 3국의 1차 사료를 섭렵했고, 일본 학자들의 주장을 철저하게 논박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한국 주류 사학계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기존의 학설과 배치됐고, 학계의 권위자들을 정면으로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최 명예교수는 “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왜 역사에 손을 대느냐는 학계의 편견은 극복하기 힘들 정도로 높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앞서서 주장했던 많은 이론에 대한 관심이 최근 높아지고 있다. 지난 13일 경기도 분당의 자택에서 최 명예교수를 만나 한국 고대사 서술의 문제점, 학계의 한계 등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주한 연구위원이 진행했다. 

―한·일 고대사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일본 학자들이 삼국사기(고구려, 백제, 신라에 대한) 초기기록은 전설이다, 조작되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데는 고대 한·일 간에 뭔가 숨겨져 있는 사실이 있다고 느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한국의 젊은 교수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 화가 많이 났었다. 그것이 연구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무엇이 숨겨져 있었던가.

“일본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고대에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라, 적어도 한·일이 동등하거나 아니면 일본이 우리 식민지였다는 거다.”

―그런 내용이 일본 측의 기록에도 있는 것인가.

“일본서기(日本書紀·신화시대부터 697년까지를 기록한 일본의 역사서)의 내용 중 80, 90%는 고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는 당시의 일본, 즉 ‘야마토 왜’가 한국의 식민지임을 밝히는데, 그들이 그걸 숨기지 못했다. 또 하나 드러나는 것이 일본의 조선항해술의 미숙함이다. 당시 일본은 조선항해술이 발전하지 못해 중국, 한국에 못 온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을 지배하나. 또 (백제가 멸망할 무렵) 나당 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백제는 일본으로 도망을 갔고, 지금의 규슈부터 나라까지 백제산성을 쌓았다. 그것이 지금도 남아 있다. 남의 나라에 산성을 쓰지는 않는다. 자기 나라니까 일본으로 간 것이고, 산성을 쌓은 것이다.”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한다.

“‘임나’가 ‘가야’라는 말은 어느 기록에도 없다. 일본 고대사학자가 만든 말이다. 가야를 임나라고 갖다 붙인 것이다. 그래서 가야가 있었던 지역에 와서 발굴하고 그랬던 거다.”

최 명예교수는 고대 한국의 일본 경영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1971년 발굴된 무령왕릉을 들었다. 능에서 나온 지석(誌石·피장자의 이름과 가계, 행적 등을 써서 무덤에 남긴 기록)과 관 등을 근거로 한 것이다.

―무령왕릉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고대 한·일 관계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제일 중요한 유적이다. 무령왕은 일본을 통치한 왕이다. 지석에 무령왕의 죽음을 ‘崩(붕)’이라고 표현했다. 왕이나 왕자 죽으면 ‘薨(훙)’이라고 하고 황제가 죽으면 崩으로 표기한다. 지석은 무령왕이 죽을 당시에 쓰인 것이기 때문에 (고려시대에 출간된) 삼국사기보다 중요한 사료다. 무령왕의 관이 일본에서만 나오는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중요하다. 일본을 통치했기 때문에 일본에서 바친 거다. 정말 중요한 사료다. 이것을 국사책에 반드시 넣어야 한다.”

―무령왕이 당시 일본을 지배한 기록이 일본서기에 있나.

“그렇다.”

최 명예교수는 이런 내용을 담은 ‘고대 한일관계와 일본서기(Ancient Korea-Japan Relations and The Nihonshoki)’라는 책을 2011년 3월 영국에서 자비로 출판했다. 일본 조선항해술의 미숙함, 고대 일본의 강역은 지금의 오사카, 나라 정도여서 독립국을 유지하기에도 협소했다는 점, 일본의 많은 지명이 백제, 고구려, 신라, 가야에서 유래했다는 점, 고대 일본은 백제가 경영하는 지역이었다는 내용, 가야와 미마나(任那)가 같은 나라라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 등을 일본서기에 근거해 밝힌 책이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주한 연구위원(왼쪽)이 지난 13일 경기도 분당 고려대 최재석 명예교수의 자택을 방문해 인터뷰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책을 영국에서 출판한 이유가 무엇인가.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세계에 알리려면 영어로 써야 하고, 미국이나 영국에서 내야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기도 했었다. 국가의 혜택을 받고 살았는데 보답할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교수님처럼 1차 사료에 근거해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를 연구하면 일본의 식민지배 경험을 고대사를 통해 해소하려는 국수주의적 관점이다, 콤플렉스에 기인한 왜곡된 관점이라고 평가한다.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다. 확인하고 따져봐야 될 것 아닌가.”

―1985년에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불신하는 학설을 반박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일본 고대사학자들은 고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라고 주장한다. 고대 사학의 원조라고 하는 이병도 선생 이래 한국의 학자들도 같은 주장을 하고, 심지어 그들의 작업을 근대적 학문이라고 높게 평가하기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공개질문을 했었다.”

―한국 학자들이 일본 학자들의 견해를 그대로 따랐다는 의미인데,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일본은 뭐든지 앞섰으니 역사도 앞섰을 것 아니냐’고 깊이 사고하지 않고 판단해서 그랬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주류 사학계에 대한 최 명예교수의 불신은 깊었다. 특히 스승, 선배의 학설을 비판하지 못하는 문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견해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토론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강하게 피력했다.

―학계의 권위주의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다.

“지금도 불가사의처럼 느껴진다. 일본인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실에 대해 침묵만 지키는 것이 권위주의가 엄중해 스승, 선배의 글을 비판할 수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들 외에 다른 학자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선배, 은사가 아니라 올바른 역사가 중요하다.”

―그것이 선배, 은사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정답이다.”

―교과서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했다.

“사실을 반영하라는 것이다. 특히 고대 한·일관계가 그렇다. 그런데 한국사학계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나의 머리로는 안 된다. 철벽이다. (내가 책, 논문을 낸다고 해도) 사학계에서는 사적으로만 보고 말지, 공적으로는 반영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문제다.”

인터뷰 말미 최 명예교수는 “죽기 전에 씨를 뿌리고 죽고 싶다”고 했다. “어디든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있으면 불러 달라”고 청하기도 했다. 자신이 경험한 현실이 엄중했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노학자는 그렇게 희망의 끈을 붙들고 있었다.

대담=이주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정리=강구열 기자

◆ 최재석 고려대 명예 교수 약력 1926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고려대 사회학과 문학박사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역임 /미국 하버드대 교환교수 /제1회 한국사회학회 학술상 수상 /제46회 3·1문화상 학술상 수상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은 '매력적인 미소'
  • 한지은 '매력적인 미소'
  • 공효진 '공블리 미소'
  • 이하늬 '아름다운 미소'
  • 송혜교 '부드러운 카리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