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진영은 회고록 발간이 이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이계의 정치세력화 시도를 위한 신호탄으로 해석하며 경계하는 기류다. 회고록 내용, 출간 시기가 사전계획에 따른 것으로 정치적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 전 대통령 주변 인사 10여명이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점으로 미뤄 회고록 출간을 통해 정치적 입지 강화를 도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친박진영의 분석이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친이계의 내부 결속이 필요한 만큼 회고록이 그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친박진영 일부에서는 그동안 현 정권의 ‘보호’를 받아온 이 전 대통령 측이 사실상 ‘마이웨이’를 선언한 이상 MB 측과 더 이상 묵시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전·현 정권의 불화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MB와 잔당들’이란 거친 표현까지 친박 핵심의 입에서 쏟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회고록 살펴보는 시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출간된 1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서 한 시민이 책을 살펴보고 있다. 회고록에는 이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세종시 수정안 부결 사태, 남북관계, 자원외교 등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다. 김범준 기자 |
반면 친이 측은 이 전 대통령이 정치전면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훈수정치’를 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을 보였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2년간 곁불을 쬐는 등 ‘찬밥신세’를 지냈다고 생각하는 친이 측은 이 전 대통령이 앞으로 정신적 버팀목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친박들이 열 좀 받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친이계 의원도 있었다. 사실 친이계로선 친박계와 맞서 싸우며 단합을 이끌 수 있는 구심점이 될 만한 인물이 없는 실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 재임시절 주류인 친이계를 견제하며 비주류인 친박계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주었다. 친이계는 이 전 대통령에게서 박 대통령과 같은 존재감을 바라는 눈치다.
친이계의 한 4선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이 직접 정치활동을 안 하겠지만 뒤에서 훈수를 두지 않겠느냐”며 “이 전 대통령은 좋은 자산으로, 국제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친이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이 재단이나 연구소 등을 만들어 사회에 기여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전직 대통령의 문화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황용호 정치전문기자 drag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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