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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으로 간 천재 시인 이용악을 아시나요?

입력 : 2015-02-12 21:09:22 수정 : 2015-02-12 21: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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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시인 주축 ‘전집’ 출간
이용악이 남쪽에서 펴낸 시집 ‘분수령’ ‘낡은 집’ ‘오랑캐꽃’.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 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 감을 줄 모르다”(‘북쪽’)

이용악 시인
이용악(1914∼1971)의 이 시를 신경림 시인이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2, 3학년 무렵이었다. 그는 “읽으면서 가슴 속으로 찡하는 울림 같은 것을 받았다”면서 “그때는 이용악 시인이 월북을 했는지조차 몰랐고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그분의 시집을 구해 시집 맨 앞에 실려 있던 이 시를 읽고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대취한 김지하 시인이 20여년 전 인사동 주점 ‘평화 만들기’ 벽에 매직펜으로 휘갈겼던 이용악의 ‘그리움’은 지난해 경매 물품으로 나오기까지 했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우에/ 느릿느릿 밤 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내리는가”(‘그리움’)

김지하는 “이용악은 예세닌이나 미당과 맞먹는 진짜 위대한 시인”이라면서 “우리 민족의 서러움을 이토록 우아하게 담다니”라고 찬탄하기도 했다. 내로라하는 시인들이 주저없이 인정하는 이용악은 1930년대 중후반 백석 오장환 등과 더불어 한국 시를 대표한 인물이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넘나드는 서정적이면서도 현실을 직시하는 시를 써서 빼어난 명편들을 생산해냈다. 그렇지만 동시대의 월북 시인 백석에 비해 이용악은 연구자들도 적고 대중에게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다. 
이용악 전집 표지

이용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곽효환(대산문화재단 상무) 시인과 이경수(중앙대 국문과 교수), 이현승(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등 3인이 주축이 되어 2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이용악 전집’(소명출판)을 펴낸 이유다. 곽효환 시인은 “문학적 중요성에 비해 이용악은 제대로 된 전집이 없어 소홀하게 다루어졌다”면서 “근대시에서 너무나 중요한 시인에게 이제야 비로소 자리를 찾아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용악이 6·25전쟁 때 월북하기 전까지 남쪽에서 남긴 시집 ‘분수령’ ‘낡은 집’ ‘오랑캐꽃’에는 서정적이면서도 현실에 발을 딛고 높은 기품을 내보이는 북방정서가 잘 스며들었다. 고려대에서 ‘한국 근대시의 북방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곽효환 시인은 “백석이 지적인 시인이라면 이용악은 가슴으로 쓴 시인”이라면서 “남쪽에서 마지막으로 펴낸 ‘오랑캐꽃’이야말로 그중 가장 빛나는 절정의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신경림 김지하가 좋아한 ‘북쪽’이나 ‘그리움’과 더불어 많은 이들이 애송하는 ‘전라도 가시내’ 같은 작품은 이용악 시를 상징하는 명편이다. 남쪽 곡창지대에서 북간도까지 팔려온 ‘전라도 가시내’를 주막에서 만난 함경도 사내의 연민이 눈보라 속에서 서럽다.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 ‘문학신문’에 실린 시편.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싹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이경수, 이현승 교수와 함께 이용악 전집을 엮어낸 곽효환 시인. 그는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이용악에게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집에는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을 배려해 출간 당시의 표기법을 그대로 살린 원문과 현대 맞춤법에 맞게 고친 ‘현대어 정본’을 함께 수록했다. 월북 이후 북에서 펴낸 시집과 산문, 좌담 자료까지 모두 망라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그동안 남쪽에서 나온 시집들만 알려져 있어 연구자들이 월북 이후 21년을 더 살다 간 이용악의 반쪽 모습만 붙들고 있었던 셈이다. 북에서 이용악은 체제에 순응하며 김일성 찬양시와 노동 영웅을 부추기는 ‘보람찬 청춘’ 같은 산문까지 쓰면서 삶을 이었다. 남쪽에서 생산했던 빼어난 시들에 비하면 문학적으로 평가할 가치는 적지만 일제 강점기와 해방과 분단을 거치면서 한 시인이 어떤 질곡의 삶을 살다 갔는지 선명하게 드러내는 자료라 할 만하다. 전집을 엮은 이들은 서문에서 “월북 이전 이용악의 시적 성취 때문에 이용악의 시적 전모도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면서 “통일시대의 문학사적 굴절을 이용악의 시보다 더 잘 담고 있는 텍스트는 없을 것”이라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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