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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목마’ 로마제국 건설의 서곡이었다

입력 : 2015-02-13 19:53:13 수정 : 2015-02-13 19: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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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브의 예스러운 문장은 별미
거장들의 작품도 풍부하게 담아
구스타프 슈바브 지음/이동희 옮김/휴머니스트/총 6만5000원
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전3권)/구스타프 슈바브 지음/이동희 옮김/휴머니스트/총 6만5000원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군이 뛰쳐나와 트로이 성에 불을 질렀다. 승리를 자축한 잔치 끝에 쓰러져 자던 트로이 군사들은 죽음을 면치 못했고, 그리스군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우리가 아는 ‘트로이아 전쟁’(트로이 전쟁)은 대체로 여기까지다. 하지만 전쟁은 폐허가 된 트로이만을 남기고 끝나지 않았다. 이어지는 시간과 이야기 속에 더욱 거대한 서사가 꿈틀대고 있다.

트로이가 멸망한 뒤 새로운 조국을 찾아 나선 아이네아스와 동료들은 숱한 역경에 맞닥뜨렸다. 새의 몸에 처녀의 얼굴을 한 괴물 하르퓌이아와 싸움도 그것 중 하나였다. 아이네아스 일행과 하르퓌이아의 싸움을 묘사한 프랑수아 페리에의 작품.
휴머니스트 제공
트로이 영웅 아이네아스는 “아버지 앙키세스를 업고 아들 아스카니우스의 손을 붙들고 어머니 베누스(아프로디테) 여신의 보호를 받으며” 불길을 벗어났다. 그들이 다다른 곳은 항구도시 안탄드로스. 아이네아스의 통솔 아래 새로운 조국을 찾기 위한 트로이 난민들의 길고 험한 항해가 여기서 시작했다. 선단은 처음 도착한 곳에 아이네아스의 이름을 딴 도시 ‘아이누스’를 건설하지만 저주받은 땅이었다. 이어 크레타 섬에서는 “불타는 태양이 주위의 논밭을 다 태워버린 불행”을 만났다. 암울한 운명 앞에 절망하는 아이네아스에게 아폴론은 전령을 보내 “이탈리아로 가라”는 신탁을 내린다. 목적지가 정해졌지만 아이네아스 일행은 “새의 몸에 처녀의 얼굴을 한” 괴물 하르퓌이아와 싸워야 했고, 거인 퀴클룹스와도 맞닥뜨렸다. 트로이인의 오래된 적인 ‘유노’(헤라)의 방해로 “동풍, 남풍, 서풍, 북풍이 동시에 바다 위로 모여 서로 부딪치며 큰 파도를 일으키는 한가운데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나라를 잃은 트로이인들이 온갖 고난을 헤치며 만난 것은 무엇일까. ‘윱피테르’(제우스)는 아이네아스의 후손에게 로마제국 건설의 운명을 예정하고 있었다.

로마 신화는 늑대가 기른 쌍둥이 중 한 명인 로물루스가 민족의 시조가 된다고 전하고 있다.
“아이네아스는 반항하는 여러 민족을 통제하고 법률과 질서를 만들 것이다. … 그의 아들 아스카니우스가 … 전쟁의 신 마르스(아레스)의 가문으로부터 쌍둥이를 낳게 된다. 늑대가 기른 쌍둥이 중 한 명인 로물루스가 … 로마 민족의 시조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로마인을 세계의 지배자로 만들고, 그 지배권에 제한을 두지 않을 작정이다.”

목마의 실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트로이인들의 어리석음의 결과가 꼭 참혹한 패배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긴 안목에서 보면 트로이가 로마의 건국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신화는 이야기한다.

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우리에게 익숙한 토마스 불핀치의 그것과 구별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책을 번역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이동희 교수는 “불핀치의 작품은 단편적인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그대로 소개하고 있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며 “구스타프 슈바브는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대하소설처럼 풀어냈다”고 적었다.

오디세우스의 그리스 귀환 여정을 표현한 기원전 1세기 중엽의 벽화.
대표적 사례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다. 트로이 전쟁 후 그리스로 귀향하면서 시작한 그의 표류는 천신만고의 여행 끝에 아내의 사악한 구혼자들을 통쾌하게 죽이고, 옛 권리를 되찾는 것으로 끝난다. 신화 속 여러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낸다.

여기에 적어도 두 가지의 분명한 미덕이 더 있다. 먼저 19세기 작가 구스타프 슈바브의 예스러운 문장을 읽는 즐거움이 크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 영원한 평화가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불화의 대문에는 철로 만든 빗장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감미로운 사랑의 독을 가슴 한가득 들이마셨다”, “여신에게 입을 맞추며 하늘 위에서 구름을 걷어낼 때와 같은 시선으로 말했다” 등의 표현들이 그렇다. 이 교수는 “구스타프 슈바브가 쓴 옛 독일어 단어와 기교적 문체의 느낌을 살리면서 오늘날 우리말에 맞게 다듬는 데 애를 먹었다”고 고백했다.

루벤스, 모로, 고야 등 서양 미술 거장의 작품과 고대의 조각, 도자기의 이미지를 풍부하게 담아내 그리스 로마 신화가 왜 서양문화의 뿌리로 간주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랫동안 서양 유적지를 답사하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알지 못하면 서양문화를 알지 못한다’라는 점을 깨달았다는 이 교수의 체험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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