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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를 통해 들여다 본 ‘100여년전의 조선’

입력 : 2015-03-05 20:46:34 수정 : 2015-03-05 21: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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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서 가치 커
그들만의 편견에 왜곡도
미국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발견돼 얼마 전 공개된 흥선대원군과 박영효의 사진은 구한말 두 사람의 행적을 설명해주는 듯해 흥미롭다. 매서운 눈빛, 굳게 다문 입과 단정한 관복 차림의 흥선대원군 사진에서는 쇄국정책을 주도한 최고권력자의 아우라가 역력하다. 갸름한 얼굴, 살짝 찢어진 눈 때문에 날카로운 인상을 더하는 박영효의 그것에서는 시대를 앞서간 개화파 지식인 면모가 읽힌다. 

최근 미국 도서관에서 발굴된 흥선대원군(왼쪽)과 박영효 사진.
순천향대 양상현 교수 제공
19세기 새로운 미디어로 등장한 사진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선을 담기 시작했다. 그림이나 글이 표현하지 못하는 분명한 이미지를 전하는 사진은 100여년이 지난 지금 당대 실상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됐다. 흥선대원군과 박영효 사례처럼 알고 있던 사실을 극적으로 확인, 강화시키는가 하면 알지 못했던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조선의 인물, 풍속, 풍경 등을 담은 사진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촬영한 것들이 많아 그들만의 편견이 작용해 왜곡된 인상을 심어주는 것도 사실이다. 

청계천 상류에 놓여 있던 ‘신교’ 모습. 독일 성 베네딕토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소장된 사진을 통해 원형이 확인됐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서울역사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서울사진’에는 청계천 상류에 놓여 있던 ‘신교’(新橋) 모습이 담겨 있다. ‘서울사진’은 성 베네딕토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성직자들이 1909∼1927년 한국 모습을 찍은 사진을 모아 펴낸 것이다. 신교와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다른 다리 사진은 전해지는 것이 있었으나 신교 원형은 이 사진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신교 위치와 가까운 현재의 청운초등학교에는 그간 출처를 알 수 없어 논란이 일었던 난간석이 있는데, 이 사진을 통해 신교에 설치되었던 것임이 확인됐다. 문루가 없는 서울도성 숙정문 모습을 전하는 사진도 있다. 사진을 분석한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 이순우 소장은 “서울도성 성문 가운데 유일하게 문루가 없는 상태로 남아 있던 숙정문의 원형을 고찰할 수 있다”며 “상트 오틸리엔 소장 서울사진은 특히 서울도성과 관련된 지역에 강점을 가진다”고 평가했다. 드물게 서울도성 혜화문 측면을 찍은 사진, 동묘의 정전 내부를 포착한 사진 등도 활용가치가 뛰어나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출간한 ‘덕수궁 미술관 설계도’에서는 사진이 다른 형태의 자료와 함께 활용될 때 얼마나 유용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배재대 김종헌 교수는 덕수궁미술관의 설계 도면을 사진과 비교하면서 “현재의 덕수궁미술관 앞 정원이 미술관의 건축 과정 중 갑자기 변형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일본인 학자들이 찍은 문화재 사진 속에서 경직된 모습의 조선인은 문화재의 크기를 보여주는 ‘가늠자’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의 증언’으로서 사진의 탁월한 가치는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함정도 있다. 찍는 사람 시선에 따라 왜곡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구한말, 일제강점기 사진을 주로 외국인들이 촬영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일본인 학자들이 만든 ‘조선고적도보’가 대표적 사례다.

1915년 이후 20년간 한국 유물, 유적 등을 촬영하고, 설명을 붙여놓은 조선고적도보는 지금까지도 문화재 원형을 살피는 데 크게 활용되는 자료다. 하지만 사용된 사진을 보면 일제가 만든 식민사관, 조선·조선인에게 부여하려 했던 왜곡된 이미지를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궁궐, 방치된 석탑 등에 초점을 맞춘 사진이 그렇다. 당대 현실이 그랬던 것도 사실이지만, 일본인 학자들은 사진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후진성과 쇠락을 강조하려 했다. 유물 옆에 조선인을 세워두고 찍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진 속 남루한 조선인은 존엄성이 배제된 채 유물의 실물 크기를 보여주기 위한 ‘눈금자’ 역할을 할 뿐이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표상 방식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한국인은 범죄자 사진을 찍듯 경직된 모습으로 한결같이 정면을 향하고 있는 반면, 일본인은 고적 조사 주체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포즈를 연출하고 있다. ‘제국의 렌즈’란 책을 통해 조선고적도보 등의 사진을 분석한 이경민씨는 “사진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실천하는 도구로 기능했다”며 “사진에 표상된 조선인과 일본인의 이미지는 인종주의와 만나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에 봉사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박상규 연구사는 “사진은 그림,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객관성이 뛰어나 사료적인 가치가 크다”며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의 우월성을 증명할 목적으로 찍은 사진처럼 초점을 어디에 두었느냐에 따라 왜곡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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