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년 전부터 전각을 시작했다. 말하자면 취미라고 할 수 있는데 별다른 이유는 없다. 한두 시간 쭈그리고 앉아서 돌에 글씨를 새기는 일의 보상은 오로지 하나, ‘즐거움’이다. ‘즐긴다’고 하면 사람들은 간혹 어딘가 진지하지 못한 자세가 아닌가 하는 선입견을 갖는다. 삶을 즐겨라, 공부를 즐겨라, 모든 행위 뒤에 ‘즐겨라’가 필수 영양소처럼, 꼭 필요한 양념처럼 따라붙지만 정작 우리는 즐기지 못한다. 즐기기 위해서 준비하고 좌우를 살피고 열심히 조사해서 구매하고 세팅할 뿐이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나라 축구협회는 외국인 감독을 영입한다. 그는 우리나라에 오기 전에는 네덜란드 국가대표 감독이었는데, 이전의 경기에서 우리나라를 여러 차례 무참히 격파했던 전력이 있는 거스 히딩크라는 사람이었다. 보통의 지도자들이 늘 그렇듯이 그 역시 자신만의 방법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팀을 정비해 나갔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이 지도했던 팀의 훈련이라는 것이 달리고 또 달리는 체력 훈련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경기를 즐기라는 이상한 주문만 계속 들려줬다.
그 말은 평소 우리가 아는 상식이나 감각에서 한참 벗어난 이야기였다. 즐긴다는 것은 (월드컵이라는) 큰일을 앞둔 사람(선수들)에게 할 만한 말은 분명 아니었다. 어딘가 경박하고 무책임한 말 같았다.집중하고 철저히 준비하고 그리고 열심히 뛰어라, 그런 이야기를 해도 시원찮은 상황에서, 연습경기에서 계속 5대 0으로 지면서도 즐기라는 이상한 주문을 해대는 감독에게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훌륭한 한 편의 시나리오처럼 그가 연출한 ‘월드컵 드라마’는 모든 고난과 역경과 비난을 거친 후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우리가 본 적이 없는 선수들처럼 이름만 들어도 주눅이 드는 대단한 세계적 선수들을 상대로 전혀 기죽지 않고 선전을 해서 사상 초유의 성적을 거둔다. 선수들은 경기를 즐겼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렸다. 이후 ‘즐겨라’라는 명제가 우리에게 부과된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즐기기 위해서 즐기는 법을 배워야 했고, 그간 우리를 짓누르는 여러 가지 사회적 강박에 즐겨야 한다는 새로운 강박이 추가되었다.
건축가 이정훈의 ‘Curving House’, 하늘로 날렵하게 솟아오르는 곡선과 수공예적 기법으로 쌓아올린 벽돌 벽이 아름다운 집이다. 1도부터 25도까지 일정한 패턴의 변화를 이루면서 어렵게 쌓아올린 벽돌은 시선에 따라 다르게 읽히며 태양의 각도에 따라 건물에 다양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남궁선 제공 |
전각의 시작은 아주 단순했다. 건축 사무소에서 도면을 그리고 건축주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렌더링을 준비하곤 한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 사무실을 시작했을 때는 8평 정도의 텅 빈 공간에 달랑 책상 두 개를 놓고 살림살이를 시작했었다. 별다른 도구들을 구입할 여력도 없었고 준비도 번거로워서 그냥 필요할 때 보태지 생각한 까닭에, 비품이라고는 연필과 몇 종류의 펜과 종이 외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그때 마침 한 구석에 아주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국산 수채화 물감, 팔레트와 썩 미덥게 생기지 않은 15호, 20호 붓이 두 자루 있었다. 그거라도 좋겠다 싶어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수채화로 채색을 해서 건축주에게 보여주곤 했다.
수채화는 대학교 다닐 때 어설프게 조금 배웠던 것이 전부였는데, 필요에 의해서 다시 그리게 되니 의외로 참 재미있었다. 그 이후 시간 나는 대로 사무실에서 필요도 없는 이런저런 풍경이나 건축물을 그렸다. 간혹 사람들이 대체 그걸 왜 하냐며 물어보기도 했는데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냥 재미있어서였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차돌멩이 바람 들면 천리를 날아가고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고.
수채화를 그린 지 10년쯤 지난 어느 여름부터는 부채에 그림을 그려 보기 시작했다. 다른 매체에 그림을 그려보니 그 번짐이나 색을 머금고 나타나는 모양이 무척 달라 서서히 동양화 혹은 수묵화라는 것을 한 번 해보고 싶어졌다.
인사동의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지켜보기도 하고,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온 요령들을 눈요기하면서 수묵화를 흉내 내는 그림을 그려보았다. 그러자 이번엔 하얀 종이에 까만 먹물로 그림을 그린 후 완성의 의미로 크지는 않으나 아주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것, 낙관이 아쉬워졌다.
그래서 다시 인사동 필방에 들러, ‘낙관을 하나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고 물어 봤다. 그랬더니 무료하게 필방을 지키고 있던 주인이 돌과 칼, 그리고 인상이라는 초심자용 고정틀을 하나 가져가라고 했다. 필방에서 시킨 대로 사포로 돌을 갈고 그 위에 먹지를 대고 글씨를 눌렀다. 그리고 도장칼로 돌을 파기 시작했다. 그래도 건축학과를 다니며 모형도 만들고 도면도 그렸던 터라, 그런 섬세한 작업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훈련이 되어있던 덕인지 제법 비슷하게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작은 돌을 앞에 놓고 새길 글자를 찾아보고, 그 글자들의 도안을 구성해서 돌 위에 쓰고 파내는 작업은, 세상의 모든 소음과 모든 소란을 끊고 사방 한 치 정도의 작은 돌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 순간, 가로세로 3㎝는 가로세로 3㎞의 광활한 대지가 되고 그 안에서 실컷 노닐게 되는 것이다.
하루 종일 자전거를 열심히 연습하다 보면 손을 놓고도 달릴 수 있는 ‘어느 순간’이 온다. 붓으로 그림을 그리든가 글씨를 쓰다보면 처음에는 붓이 자꾸 눕고 쓰러지다가 붓끝이 바늘처럼 꼿꼿해지는 ‘어느 순간’이 온다. 그 ‘어느 순간’의 기쁨은 정말 대단하다. 모두 그 ‘어느 순간’ 때문에 낚시를 하고 필드를 누비고 벽을 보고 명상에 잠기고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순간을 실존주의자들은 실존의 시간이라고 하고, 절에 다니는 사람들은 물아일체의 순간이라고 한다는데, 문제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가 될지 조바심하다가 호랑이처럼 이틀 남겨놓고 자리를 뜨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도 그렇고 사는 것도 그렇다.
건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미술관 같은 주차빌딩’을 의도한 ‘헤르마 주차빌딩’은 땅의 모양에 따른 예각에 맞춰 리듬감을 가지면서 둘러싸는 폴리카보네이트 패널은 가볍지만 각도에 따라 다른 색으로 빛나며 변화무쌍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
건축가 이정훈(조호건축 대표)을 만나면 늘 유쾌하다. 인상도 좋고 농담도 잘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건축과 그것을 만드는 과정이 무척 즐거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건물의 표면을 만들기 위해 각도가 다양한 수천 개의 철들을 용접하고 수만 장의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나가는 건축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런 자세는 건축의 표면에서 그치지 않는다.
성균관대 건축학과와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프랑스에서 공부한 그는, 건축재료학을 연구해서인지 다양한 재료의 사용에 능하고, 시게루 반과 자하 하디드(공교롭게도 둘 다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 건축가다) 사무소에서 경력을 쌓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최고의 스펙을 갖춘 건축가다.
그러나 그의 건축의 매력은 화려한 경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사무소를 열고 시작한 첫 작업은 죽전 상업지역에 설계한 ‘헤르마 주차빌딩’이라는 주차장 건물이었다. 주차장치고는 무척 멋진 그 건물의 이름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헤르마프로디토스와 헤르메스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도심 속의 주차장들은 주차장이 아닌 양 위장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환영받지 못하는 거대한 몸체를 감추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다. 주차장 부지로 분양되는 땅에 지어지는 주차장에는 상업 시설이 20% 정도 허용되는데, 그러다보니 상업적 수익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건축가는 그런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건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미술관 같은 주차빌딩’을 의도했다고 한다. 흔한 재료를 흔치 않은 방법으로 적용하다보니 공사기간이 11개월 정도 걸렸다. 패턴과 재료는 단순하지만 땅의 모양에 따른 예각에 맞춰 리듬감을 가지면서 둘러싸는 폴리카보네이트 패널은 가볍지만 각도에 따라 다른 색으로 빛나며 변화무쌍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공사 내내 매일 현장에 나가 직접 용접까지 해가며 인부들과 함께 호흡한 덕에, 완공 후 건물과 건축가 모두 주변을 놀라게 하며 주목을 받았다.
또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헤르마 주차빌딩’. 남궁선 제공 |
건축이란 무척 더딘 분야이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재료가 맞물리며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아무리 급해도 시간의 변덕에 건물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건축이란 재료를 하나씩 쌓아올리는 일이고 재료를 하나씩 붙여나가는 일이다. 그런 과정과 그런 시간을 참을 수 없다면 건축가가 될 수 없고 건물을 세울 수 없다. 그래서 늘 우리는 건축을 시작하는 학생이나 신인 건축가에게 “건축을 농부의 마음으로 하라”고 이야기한다.
자연이 어떤 심술을 부리더라도, 1년 동안 땀 흘리며 일궈놓은 곡식이 하룻밤의 태풍이나 폭우에 떠내려가도 ‘마음’을 잃지 않고 땅을 내팽개치지 않는 그런 진득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혹은 그런 과정마저 좋아하지 않는다면 좋은 건축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건 맞는 이야기이다. 사실 모든 직업에 그런 속성이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 건축은 그중에서도 기다림과 진득한 마음의 자세가 가장 절실한 분야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장에서 직접 재료를 만지며 기다릴 줄 아는 건축가 이정훈이야말로, 건축의 지난한 과정을 즐거움으로 변환시키는 대단한 ‘멘털’을 가지고 있는 건축가라는 생각이 든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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