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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해외취업 허와 실] 호텔 취업 기쁨도 잠깐…접시 닦고 감자 깎기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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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30 19:00:14 수정 : 2015-03-30 21: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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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만 무역회사·유명 호텔 근무…실제론 단순 업무·허드렛일만 해
“마케팅 업무로 알고 갔는데 두 달 내내 한국어 번역만 했다.”

서울시내 사립대학 졸업예정자인 신모(28·여)씨는 해외취업 경험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신씨는 지난해 8월 싱가포르의 한 무역회사에 계약직으로 취업을 했지만 두 달 만에 보따리를 쌌다. 취업을 알선한 중개업체는 “월소득 200만원 보장에 회사 기숙사를 통해 숙식 해결이 가능하며, 담당 업무는 구매자를 만나 제품을 설명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등 마케팅 업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신씨가 받은 실제 월급은 130만원 남짓이었고, 기숙사가 없어 미국인 부장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매일같이 부장의 눈치를 봐야했다. 게다가 신씨가 기대했던 마케팅 업무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고 영어로 된 각종 제품 설명서들을 번역하는 일만 하루 꼬박 10시간씩 했다. 신씨는 “2년 동안 취업을 준비하다가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택한 해외취업이었는데 두 달 동안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고 온 느낌이라 절망감이 더 컸다”며 “해외취업 준비 비용과 비행기 삯이 받은 월급보다 더 많았다”고 토로했다.

경북 경산의 한 전문대학교 외식학과를 졸업한 이모(30)씨는 지난해 교수 추천으로 호주 맬버른의 한 유명 호텔에 취업했지만 6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씨는 6개월 동안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하기 전까지 주방에서 줄곧 접시닦기와 감자깎기를 반복했다. 한 달에 100만원 남짓 받았다. 이씨는 “돈도 돈이지만 단순노동만 반복하는 내 모습이 너무 서글퍼서 국내로 돌아왔다”며 “취업을 알선해준 교수에게 따져 물었더니 ‘원래 외식업 쪽이 그렇다’는 무책임한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정부의 해외 일자리 개척, 해외취업 장려 방침에도 불구하고 구직자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해외취업 경험자들은 “경험도 쌓고 돈도 모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지 않도록 해외취업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나 조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해외취업 72%가 ‘사무·서비스직’… 대부분이 단순 업무


30일 한국산업인력공단 ‘해외취업 종합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취업(알선·연수)에 성공한 인원 1679명 중 가장 많은 1210명(72%)이 사무·서비스 분야에 취업했고, 다음으로 216명(12.9%)이 IT·통신 분야에 취업했다. 이어 ▲기타는 99명(5.9%) ▲건설·토목 69명(4.1%) ▲기계·금속 41명(2.4%) ▲전기·전자 33명(2%) ▲의료분야 11명(0.7%) 순이었다. 실제 해외취업 준비생들과 바라는 일자리와는 괴리가 있는 통계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지난달 취업준비생 13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해외취업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하고 싶은 해외일자리 분야로 35.62%만이 ‘서비스업’이라고 답했다. 이어 ‘IT·전자(23.29%)’, ‘경영·경제(12.33%)’, ‘건축·토목(10.96%)’, ‘영업·마케팅(9.59%)’, ‘요식업(8.21%)’ 순이었다. 구직자들이 희망하는 해외일자리를 갖게 되는 경우는 절반 정도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서비스직이나 단순 사무직 일자리를 얻었다.

희망 연봉과 실제 연봉의 격차는 더 컸다. 커리어 조사에서 구직자들은 적정연봉으로 32.4%가 ‘5000만∼6000만원’, 31.08%가 ‘3000만∼5000만원’을 들었다. ‘6000만∼1억원(17.6%)’, ‘1억원 이상(18.9%)’이라는 응답도 있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정부 주선으로 해외 일자리를 구한 청년의 평균 연봉은 1988만원에 불과했다.
◆정보부족 곤란 겪는 해외취업 구직자…맞춤형 지원 절실


해외취업을 준비했던 구직자들은 ‘해외취업 준비에 드는 비용이 부담스러웠고 정보가 많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취업준비생인 장모(27·여)씨는 해외취업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한 컨설팅 회사에서 “해외취업 사전 교육비로 100만원을 내라”는 요구를 받고 결국 해외 취업의 꿈을 접었다. 장씨는 “가정형편이 어렵다 보니 100만원을 지급하면서까지 해외취업을 하기는 힘들었다”며 “정부에서 해외취업 지원 사업을 한다고 하는데 학교 다니면서 어떤 지원을 어떻게 하는지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해외 취업 길을 모색해온 신모(28)씨는 중동 지역 기업의 인턴 자리가 나기만 기다리다 결국 포기했다. 현지 기업 측은 국내 해외취업 사이트에 인턴직을 공모해놓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신씨는 “경위를 알아봤더니 기존에 근무하던 인턴이 계속 근무하겠다고 해서 공모 공고를 내렸다고 해당 업체 측에서 설명했다”면서 “최소한 응모한 사람에게는 채용 여부에 대한 답변을 해주는 시스템이 구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외취업 문제를 연구해온 권경득 선문대(행정학과) 교수는 “구직자들의 해외취업 희망국가·직종과 현실이 제대로 부합하지 않는 상황인데도 (정부 프로그램은) ‘국내 취업이 안 되니 밖으로 내보내 보자 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해외취업 청년의 사후 관리, 운영·관리 프로그램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며 “해외취업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갖고 제대로 된 해외취업 일자리를 체계적·과학적으로 분석한 뒤, 구직자들에게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호·김건호 기자 futurnali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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