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스토리는 그녀도, 그도 아닌 중성적 인물의 ‘어떤 날’의 하루다. 하루는 일생도 될 수 있고 종말을 맞는 지구의 한순간일 수도 있다. 7개의 영상은 다만 다양한 시각을 보여줄 뿐이다. 대사도 없이 오직 ‘하루’의 이미지만 흐른다. 실험실을 들여다보는 착각이 들기도 하고 미래의 인간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문경원 작가·전준호 작가·이숙경 커미셔너 |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은 영국 테이트 미술관 큐레이터 이숙경씨는 “이 시대 미술이 우리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위해 극한 상황을 설정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미래의 특정 상황을 통해 오늘을 통찰해 보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질문이 있을 뿐이다. 관람객 각자에게 답을 돌리고 있다. 전시작 제목 ‘축지법과 비행술’은 그런 점에서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다.
축지법은 도가의 술법으로 같은 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해준다는 도법이다. 비행술은 중력을 거슬러 새처럼 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개념들은 상상력을 통해 물리적, 인지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내재적 열망을 내포하고 있다.
두 작가에게 예술이란 다소 비현실적이고 황당하게 보일 수 있는 축지법과 비행술의 개념과 같이 힘들지만 상상하고, 꿈꾸고, 경탄하며, 한계를 극복하게끔 하는 인간 욕망을 드러내는 일이다.
불확신과 불안정이 팽배하는 시대에 ‘예술이 가질 수 있는 진정한 역할과 의미’를 지속적으로 탐구해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가치와 정의가 지속 불가능할 수도 있는 가상의 미래를 그려냄으로써 보다 본질적인 차원으로까지 예술을 밀고 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인간사도 예술도 극단의 경지에서 새로운 차원이 시작되게 마련이다.
두 작가는 메일을 주고받으며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현대미술의 사회적 기능에 질문을 던지고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숙경 커미셔너와 전준호, 문경원 작가는 모두 1969년생 동갑내기들이다.
문경원·전준호의 ‘축지법과 비행술’(HD 영상설치, 10분 30초). 극한의 상황에서 예술의 궁극적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
‘베니스, 이상과 현실사이’를 주제로 한 기타전시에는 장지아 등 6명의 한국 작가들이 초청됐다. ‘개인적인 구축물’을 주제로 한 또 다른 기타전시에는 이이남 한호 박기웅 작가가 참여한다. 베니스비엔날레가 한국 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고 있는 셈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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