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하원 ‘조세감면 연장’ 카드로
영구 법제화 않고 ‘갱신’ 반복 선택
세금 더 내기 두려운 기업들은
기한만료 앞두고 의원에 ‘헌금’ 줄대기
사실상 법안이 돈 갈취 수단으로
피터 스와이저 지음/이숙현 옮김/글항아리/1만5000원 |
‘정치는 어떻게 속이는가’는 미국 정치인들이 입법과정을 통해 어떻게 돈을 끌어모으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책은 ‘이중 쥐어짜기: 너는 워싱턴에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워싱턴은 너에게 관심이 많아’ ‘날 믿어 봐: 넌 나한테 돈을 주고 싶어질 거야’ 등 10개 장으로 구성됐다.
보수 성향 연구기관인 정부책임연구소 소장인 저자 피터 스와이저는 책에서 기업인들이 뇌물을 갖다 바치는 게 아니라 정치인들에게 갈취당한다고 지적한다. 법인세, 상속세, 재산세 법안들을 보자. 세율이 1%만 올라도 기업들은 큰 손해를 본다. 이 법안들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다들 알다시피 돈이다. 정치인들도 이를 아주 잘 알고 있으며 자신들만의 무기를 꺼내든다. ‘쥐어짜기 법안’이 그것이다.
1981년 미 하원은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세액공제 조항을 신설했다. 이 공제 조항은 신기술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혁신적인 기업들을 도울 수 있도록 특별 세금감면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조항은 영구적으로 법제화된 적이 없다. 1981년 이후 계속 갱신만 되고 있다. 이처럼 갱신을 반복하는 특화된 세액공제는 무수히 많다. 1998년까지만 해도 42개에 달하는 ‘조세감면연장’안이 있었다. 2011년까지 그 숫자는 154개로 늘었다. 더 많은 기업에게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있지만 결코 ‘법’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마이크로소프트 전 최고운영자(COO) 밥 허볼드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정치인들)은 연구개발 세액공제에 대해 매번 뻔한 얘기를 늘어놓고는 항상 빈손을 내밀며 돈을 요구하죠. 그들에겐 이게 일종의 연금인 셈입니다.”
세액공제 만료를 눈앞에 둔 기업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하나는 거액의 수표를 써서 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금을 내는 것이다. 물론 모두 전자를 택한다. 내야 하는 세금보다 조세감면을 연장해줄 의원에게 헌금하는 게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진보적 성향이라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그는 상원의원 시절 미국 전역을 오가며 만찬을 즐겼다. 기업인들이 만찬 참석자 명단에 올랐는데 만찬 참석 비용은 1인당 수만달러에 달했다. 그렇게 모은 뭉칫돈은 오바마 주머니로 들어갔다. 사정이 이렇다면 조세감면이 만료되기 전에 기업들로부터 거액이 적힌 수표가 ‘후원’이라는 명목으로 워싱턴으로 날아드는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피터 스와이저는 기업들이 정치인들에게 건네는 뇌물은 정치인들에 의한 갈취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기자들에게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보험설명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수십쪽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이다. 여기 들어 있는 깨알 같은 조항들은 하나같이 난해하고 복잡하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조항들은 왜 존재하는가. 보험설명서는 가입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능한 한 당신에게 돈을 주지 않을 거야.’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법도 이렇게 말한다. ‘가능한 한 당신에게서 많은 돈을 뜯어낼 거야.’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법들은 규제의 지뢰밭이다. 정치집단에게 이런 법들은 갈취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적지 않은 법들이 ‘정의’가 아닌 ‘돈’을 겨냥해 굴러가고 있다. 존 호프마이스터(John Hofmeister) 전 셸오일 회장은 “정치인들은 의도적으로 법을 애매모호하게 만든다. 이것은 경력 쌓기 과정의 일부다. 이들은 이것이 경쟁력이라고 우긴다”고 했다. 이것이 미국만의 일일까.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비슷하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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