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남농의 집에는 입학철이면 고기 한 근 사들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다. 대부분 서울로 자녀를 유학 보내게 된 학부모들이다. 그럴 때마다 남농은 그림 한 점을 아낌없이 내주며 학비에 보태쓰라고 했다. 어려운 형편에 문안인사를 핑계 삼아 발걸음을 했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한 것이다. ‘고기 한 근’ 행렬은 어려운 이들에게 인색치 않았던 남농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화가다운 풍류를 지녔던 한국 남종화의 거장 남농 탄생 100주년을 맞아 특별전이 서울 견지동 아라아트에서 29일부터 5월11일까지 열린다. 미공개작을 포함해 산수화, 소나무, 병풍 등 전 생애의 대표작 40여점이 출품된다. 기획은 30여년간 남농 작품을 전문적으로 다뤄온 세종화랑 박정준 대표가 맡았다. 그는 대표작들을 모으기 위해 10여년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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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남농 허건. 그는 1976년 통인화랑에서 서울 첫 전시를 추진했을 때 ‘시골화가라 서울서 보여 줄 만한 작가가 아니다’며 한사코 사양을 했을 정도로 한평생 겸손의 미덕을 보여준 작가다. 세종화랑 제공 |
남농은 1938년 부친 미산이 별세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전업작가의 길로 접어든다. 한겨울에도 냉방에서 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궁핍했던 시절이다. 결국 그는 동상으로 한 쪽 다리를 절단하기에 이른다. 남농은 “그때 내게 그림에 쏟는 열정과 희망이 없었다면 분명 자살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을 정도다. 작품에 대한 예술혼과 창작의 열의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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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필의 운용과 담백한 먹맛이 일품인 ‘강산무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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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소나무의 웅장한 기상을 표현한 ‘청엽생생 철석심.’ |
맑고 섬세한 담채의 운치, 종횡의 필치가 지닌 속도감, 자신감 넘치면서도 개성 있는 화면 구성의 연출력은 남농의 성공신화를 이루게 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3m를 훌쩍 넘는 크기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와 ‘고림유심(古林幽深)’, 남해 섬들의 운치를 담은 3m에 육박하는 ‘남해다도일우(南海多島一隅)’ 등에서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푸르른 소나무의 웅장한 기상을 표현한 ‘청엽생생 철석심(靑葉生生 鐵石心)’ 역시 3m가 넘는 대작이다. 초기에 정성스럽게 표구한 병풍과 전 시기를 아우르는 산수화 작품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남농이 사재를 털어 복원한 한국 남종화의 산실인 진도 ‘운림산방’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본격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200여년 동안 5대에 걸처 미술인을 배출한 기념비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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