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들은 어제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사과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를 열었다. 벌써 1176번째다. 햇수로는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234명이던 생존자는 53명으로 줄었다. 180명의 할머니가 사과 한마디조차 듣지 못한 채 생을 접었다.
일본은 할머니들의 외침에 귀를 막는다. 방미 중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자기 나라의 전범 이미지를 세탁하기에 바쁘다. 그는 부인과 함께 유대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찾았다. 남의 범죄에 고개를 숙이면서 자기 나라 악행에는 어찌 눈을 감는가. 아베 총리는 그제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하버드대 학생의 질문에 “개인적으로 가슴 아프다”고 했다. 국가의 책임을 흐리려는 물타기 화법이다. 강연장 주변에는 ‘역사를 직시하라’는 학생들의 피켓 시위가 있었다. 아베 총리는 이들의 눈을 피해 다른 문으로 입장했다. 진실이 두려웠는가.
그날 강연장 바깥에선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내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다. 아베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분을 토했다. 대만의 가미카제 부대에 끌려간 할머니는 성노예를 거부하다 전기고문까지 당했다고 증언했다. 그때 생긴 칼자국이 지금도 몸 곳곳에 남아 있다. 이 할머니는 “죄는 미워도 사람은 밉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아베의 사죄로) 한국과 일본이 손잡고 친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일본은 할머니의 ‘성숙한 소망’에 화답해야 한다.
아베의 방미에서 군사 대국화의 길을 연 일본은 이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린다. 가당찮은 일이다. 안보리는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핵심 기구다. 잔혹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일본이 ‘전범의 꼬리표’도 떼지 않고 어떻게 평화를 입에 담는가. 세계의 양심이 일본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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