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고학년 혹은 중학생쯤 언젠가부터 아빠와 목욕탕을 가는 것이 싫어졌다. 자라면서 몸에 생긴 변화를 보이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 그 무렵 아버지에게 적잖은 불만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고교 교사인 아버지는 그의 특기를 살려 직접 교육을 담당하셨고, 소위 '수포자(수학포기자)'였던 나는 그 죽일 놈의 수학 때문에 아버지와 참 많이 대립했다. 틀린 문제를 짚어주는 아버지에게 윽박지르고 뛰쳐나가는 것은 기본이고, 심하게 대들다가 맞기도 했다. 그렇게 아버지와 나는 차츰 멀어져 갔고 내 쪽에서 대화를 끊어버렸다.
그때부터 내게 아버지는 '샌님'이 됐다. 소소한 탈선들을 일삼던 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반항에 아버지는 '범생이' 같은 소리를 늘어놨고, 나는 그런 샌님들이 모르는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싶다며 반발했다. 그 당시 난 아버지에게 '공부만 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엇나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런 내가 답답해 점차 엄하게 변해갔고, 나는 반작용으로 어머니와 더 가까워졌다. 그쯤의 아버지는 나로 인해 가정에서 고립돼 있었다.
그러던 언젠가, 크게 사고를 쳤다. 나는 '빽차'를 타고 파출소를 거쳐, 경찰서까지 끌려갔다. 사태가 이만큼 진전됐으면 가족이나 학교에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라 판단한 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내게 실망하는 것보다는 아버지가 실망하는 쪽이 나으리라 판단했던 것 같다.
전화를 받고 상황을 설명하자, 아버지는 내 위치를 묻고는 금방 경찰서로 찾아왔다. 뺨이라도 맞을 걸로 생각하고 두려워했던 내게 아버지는 "괜찮다"면서 가족에게는 내 사고를 함구하겠다고 했다. 황당할 정도로 고요한 반응이었다. 이후 사고가 원만하게 마무리될 때까지 아버지는 비밀을 지켰고, 묵묵히 내 곁에 서 계셨다.
아버지는 내가 입대하던 날에 우셨다. 의외였다. 나는 별로 눈물까지 나오진 않았는데, 어차피 휴가 나오면 금방 볼 텐데, 하지만 결코 휴가는 '금방'이 아니었다.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드디어 첫 면회 날, 마침내 아버지를 볼 수 있었고, 그때서야 나의 아버지가 얼마나 늙었는지 깨달았다. 그는 더 이상 슈퍼맨도, 샌님도 아니었다. 그는 처음 보는 생경한 주름들과 머리 곳곳에 돋아난 흰머리를 지닌, 그저 늙고 지친 50대 남자였다.
나이 50이라 하면 머리 벗겨진 늙수그레한 아저씨를 떠올렸던 내게 그제야 아버지의 나이가 '확' 와 닿았다. 아버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돼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간 얼마나 아버지에게 무심했는지, 얼마나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았는지 확인하게 됐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다시 아버지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물론 어릴 때만큼 살갑게 대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어머니와의 연애시절에 대해 묻거나 관심사를 함께하는 등 나름의 방식으로 아버지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아버지도 어색함 없이 나를 다시 받아주셨고, 과거 늘 그랬듯 재미없는 농담을 다시 시작하셨다.
놀랍게도 나의 아버지는 여전히 슈퍼맨이었다. 시시콜콜한 연애 문제에서부터 학업, 취업, 사회생활 등 내가 그에게 배울 점은 아직도 넘쳐났다. 아버지는 현명했고, 나는 이런 저런 문제들을 친구가 아닌 아버지에게 먼저 들고 가게 됐다.
언젠가 나는 술에 잔뜩 취해 '아빠는 이 고달픈 사회생활을 대체 어떻게 몇 십 년씩이나 한 거냐'면서 '나도 아빠 같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라고 하면서 투정한 적이 있다. 말랑해졌던 감정과 술기운 탓에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아빠가 참 자랑스럽다'고도 말했던 것 같다. 술에서 깨고 나서야 창피하고 쑥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히 만족스럽기도 했다. 진심을 전했다는 것도 기뻤고, 나의 아버지가 무뚝뚝하게 "술 취했으면 가서 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고마웠다.
올 초, 할아버지께서 오랜 입원 끝에 세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는 오래도록 편찮으셨기에 떠나신 것에 대한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화장하던 순간 문득 '언젠가 나도 이렇게 아버지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졌고, 눈앞의 아버지가 어떤 감정일 지가 상상돼 그의 앞에서 어린애처럼 펑펑 울고 말았다.
사실 지금까지 나는 줄곧 '아버지'보다는 '아빠'라는 호칭을 고수했다. 비교적 어른스러운 느낌을 주는 '아버지'란 단어를 사용하면 그가 지닌 책임감, 부담감을 넘겨받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 짐들을 이어받기에는 아직 '아버지만큼 믿음직한 사내'라는 자신이 없다. 그가 어깨에 짊어진 것들을 넘겨받을 때까지 아버지가 나와 함께할 시간이 많이 남았기를 바랄 뿐이다.
라이프팀 차주화 기자 cici060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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