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영 지음/돌베개/1만4400원 |
한국에서 미국 유학은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다. 미국 유학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많은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2012∼2013년 기준 한국인 미국 유학생은 7만627명으로 중국(23만5597명), 인도(9만6754명)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한국이 세계 1위다. 미국 유학파에 대한 대우가 예전만 못하지만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경희대 사회학과 김종영 교수의 신간 ‘지배받는 지배자’는 미국 유학파들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우리나라에서 유학파 엘리트들은 엄청난 인맥과 파워를 형성하고 있다. 곳곳에 포진해 ‘끼리끼리’ 문화라는 그들만의 습속도 만들어냈다.
김 교수도 미국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캠퍼스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엘리트다. 하지만 미국 유학에 매우 비판적이다. 그는 우리 대학들이 분발하고 각성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책을 썼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유학을 떠나는 상당수 인사들의 목표는 엘리트사회 진입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학문 연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유학파 엘리트 지식인을 ‘지배받는 지배자’로 지칭한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면서 미국 학계에 종속되어 있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유학파 중 상당수는 미국에서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열등한 유학생’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학문적으로 주류에 진입하지 못하는 이방인이다. 이런 인사들이 귀국한 뒤에는 미국 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 생존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김 교수는 미국 유학파들이 대접받는 이유로 한국 사회의 학벌체제를 꼽는다. 미국 대학 박사학위 소지자는 국내에서 우월한 대접을 받는다. 이는 보편적 과학주의를 추구하는 학계에서는 비합리적이고 전근대적이다. 실력주의와 과학주의가 힘을 쓰지 못하고 학위라는 일종의 문화자본이 ‘멤버십’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췄어도 미국 학위가 없으면 학계에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미국 유학을 갔다 온 지식인들은 대부분 탁월한 연구성과를 낼 수 없다고 김 교수는 주장한다. 그들은 한국에서 교수직을 유지하며 연구하고 있지만, 학맥의 뿌리는 미국에 있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끼여 있는 양다리 걸치기 방식으로는 연구에 대한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미국 유학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줄이려면 한국 대학들을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김 교수는 “우수한 연구중심대학이 전국에 퍼져 있으면서 기능적으로 분화되고 서로 전문성과 사명을 인정하는 경쟁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대부분의 한국 지식인들은 미국 학자들을 대단히 존경한다. 그들은 개방적·민주적이고 실력 위주의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대학과 학계는 굉장히 폐쇄적”이라고 했다.
국내 명문 대학들은 대부분 그 대학 출신의 미국 유학파들이 사실상 교수직을 독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면서 학술적 성과는 이미 시절이 지난 것을 재탕삼탕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김 교수의 주장이 모두 타당할 순 없으나 극도로 폐쇄적이고 기득권 유지에 골몰하는 일부 국내 대학 교수들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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