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들에게 최근 큰 관심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공정여행’이다. 즐기기만 하는 여행에서 초래된 환경오염, 문명 파괴, 낭비 등을 반성하는 새로운 여행 개념으로 21세기 들어 유럽을 비롯한 영미권에서는 크게 활성화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공정여행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인물이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다.
2009년 국내 최초의 공정여행사인 트래블러스맵을 사회적 기업 형태로 세웠던 변 대표를 만났다.
그는 공정여행에 대해 “여행을 통해서 경제적 지속 가능성, 환경적·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활동”이라며 “지역경제 활성화나 환경 보존, 지역 고유 역사 보존 등의 고민이 모두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공정여행 1세대인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는 “공정여행의 고민과 일맥상통하는 방향으로 세계의 여행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며 “우리 여행문화도 바뀔 것”이라고 밝혔다. 서상배 선임기자 |
“대안학교는 자유로운 학습이 모토여서 아이들과의 여행이 많아요. 특히 도보여행을 자주 했는데 2000년대 초반부터 아이들과 4000㎞는 걸었을 겁니다. 걸으면서 그 지역 사람들과 만나고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많이 변하더라고요. 지역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구요. 이런 경험을 여행 상품으로 만들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마침 외국에서는 공정여행이 20여년 전부터 활성화해 있더군요.”
무턱대고 직원 7명으로 사회적 기업을 시작해 지리산 둘레길 근처 독거 어르신들의 농가에서 민박을 하는 여행프로그램을 내놨다.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상품도 개발했다. 우리나라에서 공정여행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여행사는 직원 26명을 둔 어엿한 기업이 됐다. 트래블러스맵의 여행은 다른 여행사들의 그것과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아름다운 곳과 생소한 문화를 찾는 것은 같지만 좀 더 적은 인원이 지역과 밀착하고, 지역민들과 부대끼려 한다. 유명 여행지를 훑어보는 식의 여행도 지양한다.
“앙코르와트를 갈 경우 다른 관광상품은 반나절 둘러보는 것이 전부이지만 우리는 이틀 이상 충분히 천천히 살펴보는 것을 추천해요. 사람이 비교적 적은 시간에 가이드와 여행자가 함께 앙코르와트를 차분히 음미하는 거죠.”
당연히 기존 패키지여행에서 빈번했던 상품강매 등의 악습도 없다. 변 대표는 “한 가족이 여행을 갔다가 피곤하면 상점에 가는 대신 언제든지 일정을 바꿔서 쉴 수 있는 게 우리의 여행”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공정여행 관련 인프라가 전무하다 보니 이런 시스템은 모두 변 대표가 처음부터 직접 만들어야 했다.
“기존 여행사들은 현지의 로컬여행사들과 협력해 언제라도 새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취지에 공감하는 현지 파트너부터 새로 개척해야 하죠. 이렇게 협력관계를 맺어 새로운 상품을 내놓는 데까지 2∼3년은 족히 걸립니다.”
이렇게 해서 30여개국 100여개 상품이 만들어졌다. 네팔과 캄보디아에는 현지 지사를 만들기도 했다. 물론 일반적인 해외 지사의 형태는 아니다. 지역민이 지분을 100% 소유한 채 운영도 그들이 한다.
트래블러스맵은 교육과 상품개발 등을 지원하는 형태다. 여행 관련 협업 외에도 이들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도 기여하고 있다. 수익금 중 일부를 캄보디아 도서관 건립에 사용했고, 현지 학교 보수 등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지역사회가 발전해야 우리 상품의 질도 높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 지역의 발전에 투자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그의 고민이 커졌다. 지난달 발생한 네팔 대지진 때문이다. 트래블러스맵은 네팔의 세 개 마을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다행이 인명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세 곳 모두 집이 무너지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 변 대표는 어떻게든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수익금 일부를 적립하고 모금을 하는 등 적극 나서고 있다. 네팔의 파괴된 여행 인프라를 어떻게 복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깊어지고 있다.
“당장은 복구와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네팔을 더 많이 찾아주셔야 할 때가 와요. 그들에게는 관광객을 통한 수익이 중요한 삶의 원천이거든요. 굳이 가서 봉사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그곳에 가주시는 것만으로 그들의 삶을 복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지금은 그저 옆에서 돕는 것뿐이지만 그때는 저희도 네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서필웅 기자 seoso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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