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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분단의 장벽을 넘어 한 땀∼ 한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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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01 20:59:26 수정 : 2015-06-01 20: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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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자수장인들과 8년 협업’ 함경아 작가
한국작가가 지난 8년간 북한의 자수 공예가와 협업을 해왔다. 중간책을 통해 작가가 밑그림을 보내주면 북한 자수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보내오는 형식으로 작업을 했다. 한 작업이 완성되려면 보통 1년 반 정도가 걸렸다. 끝없는 인내가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당사자인 함경아(49) 작가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그는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긴 한숨으로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림을 그리면 바로 볼 수 있는데, 1년 이상을 기다린다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었어요. ‘야호!’ 하고 소리를 지르고 나서 오랜 시간이 흘러 메아리를 듣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는 사진, 설치, 포퍼먼스, 영상 등 다양한 실험성 강한 작품을 보여온 작가다. 그러면서도 정제된 회화 등 예술적 결과물로 마무리를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다. 국내외 미술계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다.

그는 이번 작업은 오랜 시간을 버티는 인내와 더불어 포기하고 싶은 심정과의 싸움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작업과정에서 몸이 많이 아팠어요. 기다리면서 여러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를 전달받는 일도 스트레스가 됐지요. 오죽했으면 이 같은 작업을 또 하면 ‘성을 간다. 함경아가 아니다’라고 몸부림까지 쳤을까요. 일부 마음에 들지 않게 해온 자수작업은 작품에서 제외하기도 했어요.”

그는 북한 자수 장인들의 작업 결과를 대부분 포용했다.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어도 시간을 두고 포용하고 채택을 했다. 그것 자체도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분단현실을 말해주는 것이라 여겼다. 물론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감수해야 했다.

“어렸을 때 북한에서 살포한 전단(삐라)을 주워 학교에 가져가면 상을 받았어요. 이런 경험이 북한 자수 장인들과 협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로서 분단의 환경을 해석하고 표현하고 기록하는 것에 대해 나름 타당성과 당위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작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미학적 탐구를 하고 있는 함경아 작가가 샹들리에 연작 앞에 섰다. 그는 “형태를 형상하는 선을 사라지게 하고 색과 픽셀, 곧 실과 한 땀으로만 보이도록 확대도안을 했다”고 말했다. 디지털 픽셀과 자수 수공의 만남이다.
국제갤러리 제공
그는 자신의 작업이 언젠가는 박물관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장담한다. 한 시대가 지나 분단상황이 사라지면 지금 이 시대상황을 증언하는 예술적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엄청나게 몸이 아파 거의 바닥을 기어다니다시피 한 적이 있어요. 중간책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아서 그랬나 싶어 산삼 두 뿌리를 구해다 줬어요. 두 시간 가까이 꿀에 찍어 씹어먹었지요. 그래도 며칠 후 또 몸이 아팠어요.”

그는 분단상황의 아픔을 몸이 말해준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북에서 돌아온 ‘작업’은 자수 밑그림보다 원색의 대조가 훨씬 강하거나 이미지 일부가 구현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전기 사정이 안 좋아 어두운 곳에서 수를 놓거나 검열을 의식한 것은 아닌지 짐작을 할 뿐이다. 남한에 홍수가 나면 시차를 두고 북한도 역시 피해가 막심해 작업이 지연됐다.

“몹시 힘들었던 어느날 ‘당신도 외로우세요(Are you lonely too?)’라는 영어 문장을 정교하게 감춘 밑그림을 보냈어요. 북에서 두 사람이 75일 걸려 수를 놓아 보내 왔지요. 2m 넘는 자수 회화를 보고 있으면 바늘땀으로만 남은 저들의 존재가 느껴져요.”

그는 ‘외롭니?’라는 대꾸를 들을 수 없어도 인간적인 차원의 상상력이 잔잔한 파장이 되어 그를 건드린다고 했다. 사실 이런 협업은 정치적으로 접근해선 불가능한 일이다. 외화벌이, 즉 돈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실제로 인사동에 나도는 자수작품 대부분이 중국에서 북한에 하청을 줘 만들어진 것들이다. 북한 그림도 같은 방식으로 미술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자본의 논리가 분단의 벽마저 헐고 있는 것이다. 통일이 서로 윈·윈하는 방식으로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땐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접근하려고 했습니다. 몸이 아프고 난 후 제가 의도하고 있는 것보다 지금하고 있는 방식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됐지요.”

그는 새로운 실험이 몸 안에서 충동할 수밖에 없었고, 몸이 아픈 것으로 나타났다고 진단한다. 거창한 무엇보다 누군가는 해야 할 분단시대의 예술적 해석이자 기록을 위한 진통이란 얘기다.

그의 작업의 근저에는 추상이 깔려 있다. 작품 도안은 픽셀화된 이미지다. 디지털 작업으로 이미지를 파편화시킨 것들이다. 인터넷 뉴스나 대중적인 유행가 가사, 개인적 감정을 드러내는 구절들로 배치했다. 70년 가까이 사회주의리얼리즘에 익숙한 북한에서는 생소한 이미지다.

“밑그림을 보고 단순작업을 하지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일 겁니다. 느리고 조용한 매체이지만 곱씹어보면서 상상하게 되고 색과 형상의 정서에서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북한 작업자들이 색을 맞추려고 뒤로 물러나 바라보기도 하고, 이게 뭔지 하고 갸우뚱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흥미롭다. 이 지점에서 냉전시대 추상표현주의가 떠오른다. 추상표현주의는 미국적인 아트로 CIA ‘X파일’로 거론됐을 정도다. 당시 자유진영의 ‘시적인 무기’로 불렸다.

“북한에선 추상은 반역입니다. 사실적 투영 이외에 개인적 순수한 감수성과 상상의 표현은 자유롭지 못하지요. 제 작업은 추상표현주의를 차용했다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북한에도 한국 드라마 등 대중매체 접촉이 늘고 있다. 중국의 하청으로 서구 명화들이 수출상품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낯선 시각적 경험과 더불어 오랜 시간 노동(작업)을 통해서 생기는 상상들이 어느 시점에서는 발화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이뤄진 그의 작품은 화려하다.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술책’이라고 했다. 공작 수컷이 날개를 활짝 펴 암컷을 유혹하는 것처럼.

5개의 대규모 샹들리에 이미지 자수회화 연작 ‘당신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섯 개의 도시를 위한 샹들리에’는 대표적 그의 작품이다. 화려한 샹들리에는 공중에 흔들리거나 바닥에 추락한 상태다. 거대 권력이나 이념(담론)의 불완전성이나 붕괴를 은유하고 있다.

작품 구상의 배경에는 북한의 거대 카드섹션이 있다. 방송카메라가 클로즈업하는 찰나에 컬러차트를 쥐고 있던 소년 중 한 명이 잠깐 얼굴을 내보이고는 재빠르게 컬러차트 뒤로 몸을 숨기는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아마도 소년은 지휘자의 사인을 보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다. 이내 소년은 이미지의 픽셀 속으로 사라졌다.

“희미한 불빛과 연약하게 무너진 샹들리에 이미지는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는 이념적 갈등과 분단상황,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역설적 관계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샹들리에 이미지 이면에는 한 픽셀, 한 땀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바친 북한의 자수 공예가들과, 그것이 함축하는 분단의 역사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고통이 숨겨져 있지요.” 마치 컬러차트 뒤에 숨어 있던 소년처럼.

4일∼7월5일 국제갤러리 개인전.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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