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고생 간의 입맞춤 장면을 방영해 논란에 휩싸였던 한 방송사의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서 극중 동성 친구를 연인으로 둔 여고생 수연은 결국 학교를 떠났다. 동성 친구와 입을 맞추는 사진이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되자, 수연에게 돌아온 것은 우유 세례를 비롯한 폭력과 따돌림이었다.
사건은 수연이 사진에 얼굴이 나오지 않은 친구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둘 사이의 관계를 끝내고 학교를 떠나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이 과정에서 교사와 동급생들로부터 수연의 존재와 감정은 전면 부인 당했다.
서울시가 2012년 실시한 아동·청소년 대상 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 청소년을 친구로 사귈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약 25%에 불과했다. 남학생의 경우 21.7%로 36.5%의 응답률을 보인 여학생들에 비해 특히 거부감을 나타낸 응답자가 많았다.
‘아우팅(동성애자임을 본인의 허락 없이 알리는 것)’으로 인해 학교를 등지는 이들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제도권 밖의 삶을 택하기 겁이 나 고통을 감내하며 지내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내 모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A씨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눈과 귀가 멀고 말 못 하며 지낸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공부를 잘 하는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폭력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동성애 성향이 알려진 뒤부터는 반 친구들 속에서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며 "존재를 부인 당하는 것을 참으며 공부만 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혼자 고민하고 숨기며 스스로도 '내가 잘못된 건가'라는 생각을 수없이 해 본 것이 사실"이라며 사회가 강요하는 가치관과 규범이 가하는 압박이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는 한층 무겁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당시에도 고민을 공유하는 친구들이나 성소수자 청소년의 삶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선배들이 있었다면 훨씬 덜 힘겨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학에 입학해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특히 그런 생각이 든다"고 안타까워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는 가정도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어린 자녀가 이성애자가 아니라는 사실 자체에 큰 충격을 받고 교화나 치료의 대상으로 여기는 가족들로부터 폭언과 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심한 경우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당하기도 한다.
실제 <선암여고 탐정단> 해당 회분이 방영된 이후 가장 크게 반발한 것은 학부모단체였다. 학부모들은 방송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교육상 부적절한 내용을 미화해 내보냈다면서 사과와 관계자 징계를 요구했다.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기독교계의 반발도 거셌다. 육우당의 추모 행사가 열린 날도 인근에서는 기독교단체들이 항의 집회를 열었다. 성소수자이기에 이들이 겪는 차별과 폭력은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가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국가 정책과 학교 차원에서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교육 프로그램과 괴롭힘을 막는 장치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는 '성소수자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폭력, 어떻게 막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린 바 있다.
전문가들은 당시 동급생·학부모들의 성소수자 자체에 대한 인식 부족과 교사들의 관심 부족으로 인한 방관을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가정과 학교 안에서 폭력에 노출되는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한 법률 전문가는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를 통해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을 마련하고 학교 차원에서도 교사와 교직원·학생들을 상대로 성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교육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런 가운데 박원순 시장 취임 초부터 '인권도시 서울'을 내세웠던 서울시가 연이은 성소수자 인권문제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지난해 인권의 날을 앞두고 추진된 서울시민인권헌장이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이유로 제정이 무산된 것은 물론 성소수자 단체인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사단법인 허가 문제, 서울광장 퀴어축제 불허 등으로 거듭해 입길에 오른 것이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SNS 등에 밝힌 설명을 종합하면, 조직위는 행사일인 이달 13일을 90일 앞둔 지난 3월16일 서울광장 사용신청을 접수하기 위해 서울시청을 찾았다. 서울시 조례상 행사일 90일전부터 광장 사용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조직위가 행사를 열 날에는 에스원과 법무부 주관의 '다링안심켐페인'이 예정돼있어 접수가 불허됐다.
이에 조직위가 의구심을 제기하는 근거는 크게 2가지다. 서울시는 홈페이지에 서울광장 행사 신청 현황을 게시하는데, 조직위가 신청할 당일에는 아무 행사도 표시돼있지 않았다. 또 2009년부터 7년 동안 서울광장에서 행사를 열기 위해 사용신청을 냈지만, 매번 행사가 잡혀있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성소수자를 위한 공익재단인 '비온뒤무지개재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초 서울시에 사단법인 신청을 문의했지만 "미풍양속에 저해될 소지가 있어 불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가 "우리 관할이 아니니 국가인권위로 가보라"는 답변을 받았다. 서울시가 알려준 대로 인권위에 이어 법무부도 찾았지만 벽에 부딪히긴 마찬가지였다. 재단은 법무부를 상대로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낸 상태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11월에는 시민위원회가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포함시킨 서울시민헌장을 '사회적 합의 부족'을 근거로 거부해 인권단체와 종교단체들이 시청로비에서 맞불 농성을 벌이는 등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행정 절차에 따른 결정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퀴어문화축제의 경우 서울시 인권담당관이 조직위 관계자들과 두 차례 간담회를 거쳐 서울광장 사용허가 주무부서에 "신청단체나 행사의 성격에 따른 차별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설명이다. 또 성소수자를 포함한 인권소수자에 대한 보호와 권익 증진은 서울시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60세 미만 성인 13명 가운데 1명꼴로 동성애자 등의 성소수자라는 조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최근 일본 광고회사 덴쓰(電通)에 따르면, 다양성 문제를 연구하는 조직인 '덴쓰 다이버시티 랩'이 지난달 전국의 20세 이상 59세 미만 성인을 6만9989명을 상대로 실시한 예비 조사에서 성소수자(LGBT)의 비율은 7.6%로 집계됐다.
조사에서는 ▲신체의 성별 ▲당사자가 스스로 인식하는 성 정체성(마음의 성) ▲좋아하는 상대 또는 연애 상대의 성별 등 3가지 기준을 점검해 성소수자를 분류했다.
이 가운데 남성의 신체를 타고난 이가 자신을 남성으로 인식하고 여성만을 연애 상대로 생각하는 경우와 여성의 몸을 지니고 여성의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 남성과만 연애하려고 하는 사례가 아니면 모두 성소수자로 규정했다.
성소수자의 비율은 2012년 조사 때보다 2.4% 포인트 증가했으며, 덴쓰 측은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성소수자 관련 정보가 늘어나면서 당사자의 자기 인식이 바뀌었거나 조사 방법의 차이가 이런 비율 증가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추정했다.
덴쓰 측은 예비조사에서 성소수자로 판명된 500명과 성소수자가 아닌 것으로 규정된 400명을 상대로 재차 조사를 한 결과, 일본 내 전체 성소수자의 소비 시장 규모가 최소 5조9400억엔(약 53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식품 ▲음료 ▲술 ▲가전제품 ▲의료 ▲보험 ▲자동차 ▲여행비용 ▲가구 구입비 등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며, 지출에서 비중이 큰 22가지 상품·서비스를 대상으로 분석한 시장 규모다.
덴쓰 측은 성소수자 본인 뿐 아니라 성소수자가 아니지만, 이들을 지지하려는 동기에서 이뤄지는 소비 경향을 이른바 '무지개(rainbow) 소비'라고 규정하고 이에 관해서도 분석했다. 자신이 성소수자는 아니지만, 성소수자를 지원하는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의향은 53% 수준으로 측정됐으며 무지개 소비에 관해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사측은 밝혔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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