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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비움의 붓질… 볼수록 강렬하다

입력 : 2015-08-18 20:35:14 수정 : 2015-08-18 20: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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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가 단색화展 잇따라 단색화가 부상하며 국내외적으로 한국 추상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덩달아 화랑가에선 1970년대 이후 한국 추상미술계를 이끌어온 작가들의 전시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23일까지 학고재에서 열리는 이동엽전은 휴가철에도 많은 컬렉터들의 몰려들었다. 국제갤러리에서 10월로 예정된 하종현전엔 벌써부터 컬렉터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침체된 미술시장에 단색화가 활기를 불어 넣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대구의 우손갤러리에선 20일∼9월25일 이강소전이 열린다. 서울 성동구 더페이지갤러리도 내달 20일까지 최명영 초대전을 마련했다. 내달 29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물성을 넘어, 여백의 세계를 찾아서 -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1’전도 같은 흐름이다.

동양화에서 먹선의 흐름을 연상케 하는 오수환의 ‘Variation’.
특히 가나아트센터 전시는 미술평론가 김복영씨가 참여해 단색화를 ‘여백의 미’ 차원에서 학문적으로 정리해 보는 자리라 눈길을 끌고 있다. 전시에서는 이승조(1941∼1990), 박석원(1942∼ ), 이강소(1943∼ ), 김인겸(1945∼ ), 오수환(1946∼ ), 김태호(1948∼ ), 박영남(1949∼ ) 등 1970년대 한국 추상미술의 다양한 경향 중에서 정신성을 추구하고자 했던 주요 작가 7인이 참여했다. 이들은 1970년대 미니멀리즘의 영향하에 물질 그 자체의 속성이 두드러지던 미술계에서 꾸준히 그들만의 독자적인 실험을 지속해왔다. 이들은 완전히 물질로만 작품을 채우지 않았으며, 오히려 물질을 넘어선 그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신념을 통해 사유의 세계를 작품으로 표현해 나갔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김복영은 이들의 작품이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를 넘나들었으며, 이를 드러내는 증거가 바로 작품에 드러난 여백이라고 말한다. 여백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관념과 사유의 세계를 드러내는 우리 미술만의 고유한 지표라는 것이다. 

삶에 대한 격정과 고뇌를 붓 너울로 풀어내고 있는 이강소의 ‘허(虛)’.
단색화를 ‘새로운 공간 형성’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색조가 어떻든간에 어둠(색)과 빛(여백)의 교차를 통해 사유의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축학도의 필독서인 건축가 유하니 팔라스마의 저서 ‘건축과 감각’(시공문화사)도 비슷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사유는 희미한 불빛과 그림자 속에서 활성화되고, 명료하게 생각하기 위해 시각의 날카로움은 억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초점을 두지 않는 시야를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사고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달 부산시립미술관에서도 전시를 갖는 김태호의 ‘Internal Rhythm’.
유하니 팔라스마는 균질하게 밝은 빛은 상상을 마비시킨다고 했다. 인간의 눈은 밝은 대낮의 빛보다는 황혼의 어슴푸레한 빛을 위해 가장 완벽하게 조율되었다는 것이다.

기하학적 추상 충동을 화폭에 풀어낸 이승조의 ‘Nucleus’.
안개와 황혼이 상상력을 일깨우는 이유는 그것들이 시각적 이미지를 명료하지 않고 모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단색화 작가들은 아무 생각없이 수만번의 붓질을 반복한다. 어느 순간 모호한 이미지 속으로 무한의 사유공간이 열리게 된다. 단색화에 정신성이 깃드는 순간이다. (02)720-1020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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